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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도 벌벌 떤 양화마을과 느티나무35번째 나무-일운면 양화 느티나무


일운면 양화마을 느티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으로부터 지켜낸 일화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일 취재 당일 느티나무 아래서 이야기 속 주인공인 故이사현 옹의 후손인 이상진 씨와 그의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내용인 즉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군이 전투기의 프로펠러를 만들기 위해 이 나무를 베어 가려 했다. 이때 서슬 퍼런 일본군의 총칼 앞에 이사현 옹이 막고 나서서 “이 나무를 베어가면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크게 화를 내니 겁을 집어먹은 군인들이 물러났다고 한다.

일운면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1944년 7월경 일본은 조선의 보호수를 제거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양화마을의 느티나무도 그 대상에 포함돼 일본 관헌들과 인부들이 베기 위해 마을에 들이닥쳤다. 당시 마을에서는 3년 마다 이 나무에 큰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처럼 신성한 나무를 베려하자 이사현 옹은 나무에 술을 한잔 부어놓고 “이 나무를 베는 자에게 천벌을 내리소서!”하고 빌었다. 그랬더니 벌목하러 온 인부들이 겁에 질려 한달음에 도망쳤다는 이야기다.

일본이 강압적인 무단통치를 벌이던 때에 일본군을 향해 큰소리로 꾸짖은 이사현 옹의 기백은 후세에도 길이 전해질만 하다. 아울러 그렇게 지켜낸 이 나무를 앞으로도 잘 가꾸어 그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이 없어야겠다.

현재 이 나무는 거제시 보호수 12-19-3-1-5에 지정돼 있다. 흉고(사람 가슴 높이)는 약 6.7m이고, 전봇대 굵기만 한 가지가 사람 손가락처럼 여러 갈래로 하늘을 향해 뻗었다. 나무 옆에는 개울이 흐르는데 일운면지에 따르면 큰 내고랑이라고 한다. 또 느티나무를 버선덧거리 또는 벼선떳거리 정자나무라고 부른다.

양화마을은 나무 이야기가 풍부하다. 느티나무와 그리 멀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 마을 당산인데 여기에도 당산나무로 모시던 후박나무가 있다. 그 앞에 세운 안내판이 내력을 소개하고 있다.

이 후박나무는 1880년쯤 야마노우치(山內)라는 일본인이 이곳에 이주하면서 심었다. 그 주변에는 벚나무와 굴참나무를 심어 이 산을 가꿨다. 나중에 이 나무가 거목으로 자라자 이사현 옹이 주민들과 새로 단장해 당산나무로 정했다.

당시 봄이면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뤘는데 굴참나무가 번성해 벚나무들은 고사하고 굴참나무 군락지가 돼버렸다. 소리 없는 전쟁에 무사히 살아남은 후박나무는 어른 두 명이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만큼 크게 자랐는데, 약 60년 전 인근 마을 주민이 약재로 쓰기 위해 껍질을 지나치게 벗겨가는 바람에 원줄기가 고사하고 말았다. 지금은 남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남았다.

앞서 말한 큰 제사는 ‘대동제’라고 한다. 느티나무뿐만 아니라 마을회관과 당산, 바닷가 등 마을 전체를 두루 밟으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豊漁)를 빌던 별신굿이다.

당대 거제·통영 지역에서 최고의 무녀로 꼽히던 정모연(중요무형문화재 제82-라호 남해안 별신굿 초대 예능보유자) 무녀 일행이 양화마을 굿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이상진 씨의 어머니가 아직 당시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별신굿을 하지 않고 매년 술을 바치는 정도의 고사만 지내고 있다.

당산에 남아있는 후박나무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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