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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웃음소리 가득 찼던 그늘이 그립다열여섯 번째 나무-오량마을 느티나무
▲ 오량성 서문에 있는 느티나무

통영에서 국도14호선을 타고 거제대교를 넘어올 때 첫발을 내딛는 거제 땅이 사등면 오량마을이다. 그래서 이 마을을 ‘거제의 관문’으로 일컫는다.

대교를 건너 얼마 가지 않아 국도 오른쪽에 붉은색의 대형 고리가 보이는데 이곳은 거제관광안내소로 화장실과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안내소를 두르고 있는 벽이 오량성의 옛 성벽이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09호인 오량성은 지난 2006~2007년 3억 5000만 원을 들여 두 차례에 걸쳐 88m를 복원했다. 사등면지에는 복원한 성벽이 원형과는 전혀 다른 형태여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기록돼 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복원한 덕분에 성 안과 밖이 보기 쉽게 구분돼 있다. 성벽을 경계로 안에 민가가 밀집해 있고, 밖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 오량성의 구조

국도14호선 옆에 난 작은 마을 도로는 성의 서문을 통해 동쪽으로 관통한다. 이 서문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 세 그루가 마을의 문지기라도 되는 냥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1982년 보호수 12-19-7-6-10호에 지정된 나무다. 거제시 보호수 관리 대장에 따르면 수령은 300년이고 높이는 15m, 흉고(사람 가슴높이)는 3.4m, 수관 직경은 24m이다. 지난 12일 직접 재어보니 흉고가 4m로 기록보다 더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에 따르면 이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심었는지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이 마을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어릴 적, 젊었을 적 옛날을 돌이켜 보면 이 나무는 마을에서 참 다양한 역할을 했다.

논농사를 앞둔 봄철에는 이 나무에서 잎이 나는 모양을 보고 언제 모(벼 모종)를 심을지 판단했다. 아래에서 먼저 잎이 나면 곧 비가 올 것이므로 모를 빨리 심고, 위에서부터 잎이 나면 가물다는 뜻이므로 일을 미뤘다. 전체가 고르게 피면 기후가 적당해 그해 풍년을 기대하기도 했다.

사등면지는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동쪽에 먼저 피면 가뭄이 들고, 북쪽이 먼저 피면 홍수가 지고, 남·서쪽이 먼저 피면 평년작이다. 전체가 고루 피면 풍년인 것은 같다.

이처럼 날씨를 점치는 나무를 기상목(氣象木)이라고 한다. 단순히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해 기후를 전망해 농사를 대비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가 깃든 풍속이다.

농사가 한창이면 주민들은 더 자주 이 나무를 찾는다. 주변에 큰 그늘이라곤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농사일하다 따가운 해를 잠시 피하려고, 저녁에는 이웃을 만나려고 나무 아래 모였다고 한다.

주민들이 몰려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술을 받아 주기도 했다. 성을 통과해 산 쪽으로 오르면 신광사(석불암→벽담사→신광사)가 나오는데, 영험하다고 소문난 오량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8호)이 이 절에 있어 이를 보려고 성을 지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마땅히 놀거리가 없던 농촌 아이들에게도 이 나무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늘 동네 꼬마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한 어르신은 나무 그늘이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옛날이 무척 그립다고 말했다.

마을의 휴식처이자 소통과 화합의 장이었던 나무는 오늘날 그 역할을 크게 잃었다. 마을회관이 생겨 노인들은 더욱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게 됐고, 젊은 세대가 빠져나가면서 아이들도 보기 귀해졌다.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가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오량마을은 문화재로 인정받은 성벽과 보호수, 불상 등이 산재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개발이 제한되고 발전이 멈춘 상태다. 그래서 문화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주민들도 있다. 게다가 농촌 벽지라서 인구 유입을 기대하기 힘들다. 마을을 유지하던 노인들도 해마다 줄고 있다.

마을에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 없이 역사가 이어질 수 있을까. 미움 받는 문화재가 오랫동안 지켜질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혜안을 찾을 수 있도록 세간의 많은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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