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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아래서 피어난 대금마을 이야기네 번째 나무-대금마을 팽나무

▲ 장목면 대금마을 팽나무 아래에 모여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민들. 정석만(왼)씨와 정일수(오른) 이장이 나무 아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옛날을 이야기할 때 괜스레 말이 많아진다. 세월에 짓눌려 문드러진 기억을 말이라도 이어붙여 붙잡으려는 그리움이 아닐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물이 있다면 그 기억은 더 또렷이 살아난다. 이를테면 긴 시간 마을 터를 지킨 나무나 바위 등이다.

지난 2일 장목면 대금리(대금·복항마을) 팽나무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대금마을 정일수(61) 이장을 만나 나무에 관해 묻다 보니 어느새 주민 대여섯 명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앉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들 대부분 60~70대 노인이고, 이들보다는 청년이라고 할만한 정 이장과 황재봉(59) 씨가 두서없이 쏟아지는 얘기들을 잘 정리해줬다.

대금마을 정류장 가까이에 자리한 이 팽나무는 1997년 2월 19일 거제시 보호수 12-10-10-8-1에 지정됐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정번호에서 첫 ‘12’는 경남도의 번호다. 그 뒤 숫자는 당시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는 ‘도번호-지정 연도-당해 지정 순번’으로 번호를 조합한다고 한다.

기록된 나이는 320살이고 높이는 18m, 가슴높이 둘레는 3.5m이다. 거제시 확인 결과 이 나무에 대해 따로 조사한 기록이 없으니, 지정 당시의 측량값으로 보인다.

이날 나무 둘레를 줄자로 재어보니 6.5m에 달했다. 수치상 두 배 가까이 불어난 셈인데, 그만큼 자랐다기보다는 엄청난 중량에 눌려 위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퍼지는 현상으로 헤아려진다. 그래서인지 몸통 살집이 알찬 근육 같지 않고, 물살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그것도 나름대로 육중한 멋이 있으며, 10m 줄자로도 잴 수 없는 굵고 긴 가지가 사방으로 뻗쳐 푸른 하늘에 고풍스러운 부채 하나를 그려놓은 것 같아 퍽 인상 깊다.

나무는 시 보호수지만 나무가 선 땅은 주인이 따로 있다. 최근 나무 가까이에 새집을 지으면서 걸치는 가지들을 시로부터 허가받고 잘라냈는데 당시 집주인과 주민 간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나무 아래엔 비탈면 쪽으로 계단형식의 덱(deck)이 있는데 예전엔 나무를 둘러 있었고, 보호수임을 알리는 팻말도 있었다.

주민들은 ‘포구나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팽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포구’라는 콩만한 열매를 맺는데 어릴 땐 먹을 게 귀해서 먹었고, 달콤해서 간식 삼아 먹었다고 했다.

이 나무는 누가 심었는지도 아직 전해지고 있다. 마침 함께 있던 정석만(75) 씨가 밝히기를 자신의 큰아버지인 故 정두지 씨가 심었다는데 주민들도 몰랐던 눈치다.

이 나무에서 동쪽으로 30여m 거리에 크기가 맞먹는 팽나무가 한 그루 더 있는데 정 씨가 절친한 친구였던 ‘대밭집 김씨 할배’와 한날 같이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무는 집 뒤 담벼락에 위태롭게 자리 잡았고, 밑동에 커다란 옹이까지 생겨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협이 됐다. 그래서 예전 집주인이 고사(枯死)시키려고 소금 한 자루를 옹이에 채웠는데 되려 양분 삼아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옛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대금마을도 한때는 꽤 번성했다. 당시엔 한 가구당 자녀가 6~10명이나 됐으며, 마을 전체 인구가 1500명 가까이였다고 그 시절을 더듬었다.

또 정 이장이 대금초등학교에 다닐 땐 전교 학생이 400~500명이나 돼 복작복작 했단다. 실제로 1966년 문을 연 대금초는 1998년 폐교할 때까지 총 28회 1068명이 졸업했다고 장목면지에 나와 있다.

시간이 흘러 도시가 발달하면서 젊은 세대가 빠져나가고, 이제는 대금마을과 복항마을을 합쳐 121세대 269명만 남았다. 한 집에 두 명꼴로 사는 셈이다.

설상가상 거가대로가 장벽이 돼 산 아래 마을과 바닷가 마을을 갈라놨다. 예전엔 거리가 멀어도 손인사하며 안부를 물었었다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주민들은 매우 섭섭해 했다.

거제에 남은 대부분 벽촌이 이와 비슷한 사연을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전통과 역사가 대대로 이어지는 데는 삶터를 지켜가는 주민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 쭉쭉 뻗은 가지가 마치 부채를 펼쳐놓은 듯 하다.
▲ 몸통 살집이 탄탄한 근육같지 않고 물살처럼 흘러내리듯 하지만, 그것대로 육중한 멋이 있다.
▲ 2월 현재 대금마을 바다에서는 파래와 대조개가 많이 나고 있다며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 장목면 대금리 대금마을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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