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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 팽나무 아래에 ‘애민(愛民)’ 있더라29번째 나무-신계마을 팽나무

통영 방향으로 국도14호선을 달리다가 거제대교가 보이면 거기서부터 도로 오른쪽 들판을 신계마을이라 보면 된다.

이 마을에서 이장을 지냈다는 한 어르신에 따르면 신계는 원래 오량마을 안에 있었다. 오량 1·2구로 있다가 분동되면서 오량과 신계로 따로 불렀다. 연초면 한내마을이 1·2구에서 한내와 한곡으로 분리된 것과 같다.

사등면지에는 마을 앞에 냇가(오량천)가 흐른다는 뜻으로 원래 지명은 ‘도랑몰’이었다고 나와 있다. 또 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의 비석이 있고, 마을의 길흉을 점치는 이팝나무가 쌀알처럼 꽃을 피운다고 돼 있다.

비석과 이팝나무는 찾기는 쉬우나 가까이 가기는 수고롭다. 논 한 가운데 아름드리 팽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는데 그 아래 있다. 이 팽나무가 이번 29번째 주인공이다.

이팝나무는 병이 들어 문드러진 지 오래다. 지금은 썩은 줄기만 가련히 서 있다. 원래는 이 나무의 정체를 몰랐는데 앞에 언급한 어른신이 이팝나무라고 해 알게 됐다.

바로 옆에는 조경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사등면지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비석은 1976년 5월 31일 오량리 848-4번지 유덕준 씨의 논에서 발견됐다. 논바닥에서 1.3m 아래서 발견됐는데 이 비석 위에 다른 비석이 포개져 있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107대(1739년 추정) 삼도 수군통제사 조경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꼈다. 이에 역원(驛院)이 있던 오량마을 사람들은 그를 추앙해 비석을 세웠다.

그 뒤 그의 아들인 조심태가 제143대 통제사로 부임해 오략역을 순시하다가 그 비석을 발견했다. 천한 역민(驛民)이 아버지의 비석을 세웠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던 조심태는 아버지 이름이 새겨져 있어 차마 부수지는 못하고, 땅에 묻어버렸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비석을 세워 ‘이 아래 통제사 조경 비석이 묻혀 있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몇 백 년이 흘러 두 비석 모두 땅에 묻혀 발견된 것이다.

사등면지 집필자는 “계급사회였던 당시엔 역민이 세운 비석이 천했을지라도 지금은 어떤 비석보다 가치 있는 민중의 비석”이라고 평가했다.

비석은 팽나무 아래로 옮겨 다시 세워놓았다.

돌담 위 좁은 평지에 수백 년 된 비석과 고사한 이팝나무와 함께 있다 보니 이 나무는 더 오래돼 보인다.

돌담 가장자리에 있어 둘레 재기가 쉽지 않아 반만 재보니 2.2m다. 전체 둘레는 4.4m 정도 될 것이다. 거제시 보호수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한때는 당산목으로써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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