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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순애 /예인유치원 원장

봄이다. 아이들의 계절이고 초목의 계절이다. 눈부신 햇살의 계절이고 소솔한 바람의 계절이다. 엄동을 건너온 생명들은 봄날의 따사로움에 기댄다. 경칩의 알집에서 깨어난 어린 개구리는 풀 섶 주변을 기웃거린다. “남쪽은 항상 봄”이라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이 없어 그렇다.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아이들 스스로 꽃이다’라는 선입견을 어른들이 인식하면 된다. 유치원은 봄꽃보다 아이들 꽃이 먼저 피고 만발한다.

유치원의 3월은 출발의 계절이다. 아이들의 눈망울은 빛나고 설렘으로 가득하다. 겨우내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온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둥지를 나와 다른 세상을 바라본다. 이때는 잠자고 있던 ‘창’이 스르륵 열린다. 시간의 개념을 알고 이성과 논리에 근력이 생기고 속도가 끌어당긴 긴장에 적응한다. 봄은 그렇게 새 생명의 숨결을 움트고 정착하는 계절이다.

유치원 뜰에는 동백꽃이 낙화 준비를 하고 있다. 송이째 떨어지지만 한꺼번에 지면에 닿지 않는다. 천천히 손 흔들면서 떠나겠다는 신호다. 가련한 청순이 남긴 이별은 아픈 법이다. 동백꽃의 석별은 엄동을 견딘 자기 서사의 엄중함이다. 나는 동백의 꽃피는 것도 보았고 꽃이 지는 것도 보았다. 몇 날에 걸쳐 서서히 떨어졌고, 제법 오랫동안 어미나무 그늘 아래서 온기를 나누고 토닥거리는 것도 보았다.

유치원 뜰에서 서성이던 어떤 아이가 "동백꽃이 수북하게 쌓였네요."라고 혼잣말처럼 툭 던진다. 꽃 진 자리에 앉은 붉은 동백꽃이 얼마나 허망한지. 아이들이 바라본 '창'은 호기심 천국이다. 그러면서 수북하게 쌓인 동백꽃이 생을 다할 때 까지 '함께'라는 공동체를 어렴풋이 느낀다. 동백나무에 앉은 새들도 눈방울을 굴리며 봄을 가른다. 아이들이 인사로 재잘거리고, 웃음으로 반기고, 천진하게 떠들며 유치원의 아침을 깨운다. 왁자지껄 무리를 지은 아이들이 제각각의 표정으로 동심의 꽃 문을 연다. 연신 싱글벙글 웃는 아이, 시큰둥한 아이, 아직도 엄마 품을 떠나지 못해 칭얼대는 아이도 개별적 존재다. 그래도 눈망울은 선하다. 인정받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이 다 들여다보인다. 들뜨고, 낯설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다채롭다. 그러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사랑스럽다. 기쁨이고 축복이다. 아이들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다가가는 인격체다. 그럴 때 ‘창’ 너머의 아이는 잎이 무성한 감수성 나무로 자란다.

예인유치원 입구 양 기둥에 세운 로고는 생명, 열정, 상상, 평화의 상징이다. 중심에는 환경, 생태, 아이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 중심축인 ‘창’으로 바라본 지구는 하나다. 이는 불변의 진리다. 이곳에서 두 손을 잡고 아우르는 공동체가 형성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 세상과 당당히 맞서는 도전과 열정, 끊임없는 생각이 키운 상상이 우주가 빚어낸 삼라만상의 공간을 연다. 하늘과 맞닿은 산 능선은 별을 헤는 꿈의 원천이고 숲이 이룬 평화를 보듬는 저장소다.

예인유치원은 아이들이 존중받는 세계다. 138개의 빛깔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사는 꿈 터다. 꿈은 꿈 터에서 가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직시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관에서 안목을 키우고 보편성을 키운다. 하늘의 별 하나와 유치원의 별 하나는 다르지 않다. 유치원의 슬로건처럼 별은 스스로 빛난다고 아이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은 학습이 아니라 공감이고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럴 때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것을 나는 오랜 경험으로 체득했다. 아이들이 타고난 고유의 색깔은 개성이고 이는 심성에서 나온다. 시시각각 빛나고 나무의 떨림처럼 출렁거린다. ‘창’을 닫으면 주눅이 든 아이로 보이고 ‘창’을 열면 긍정의 마음 물결이 출렁인다. 아이들의 속성은 짹짹거리는 참새를 닮는다. 다만 어른들은 창공을 항해 손으로 참새를 쫓으면 된다. 그럴 때 참새는 적의를 품지 않는 농부의 마음을 안다. 그런 아이들이 원하는 유치원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 정답은 현장의 얼굴인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 편견이 들어가면 편견의 아이가 자라고, 무시가 들어가면 무시의 아이로 자란다. 꿈을 빼앗으면 꿈을 잃은 아이로 커간다.

아이의 미래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서 나온다. 새로움을 즐기는 아이들은 두려움이 없다. 공동체에서 이탈하지 않는 아이는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힘을 키운다. 잘나고 못나고의 차별도 없고 위아래의 격차도 없고 상대에 앞서는 순위가 없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존중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아이들의 미래는 그런 세상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믿음을 먹고 자란다. 믿음은 대상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이다. 아이가 질서를 지키면 반칙을 모르고 자란다. 고정관념을 이탈할 때 창의성이 생긴다. 어른은 시간의 개념에서 바라보고, 아이는 공간의 인지에서 바라본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창’은 무궁한 꿈이 펼쳐진 공간이다.

망망대해 미지의 세상! 아이들은 돛단배를 타고 떠나는 출발선에서 희망의 노를 저어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숲은 개별적 나무가 이룬다. 내 아이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을 마음껏 펼쳐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창’이 스스로 열리면 꽃송이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들 눈망울이 보인다. 꿈이 현실을 먹고 자라지 않고 그 꿈이 꿈을 먹고 자란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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