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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본 이 없어도 묵묵히 지킨 향기31번째 나무-사등면 장좌마을 모과나무

모과 열매는 달콤한 향기와 노란 빛깔 때문에 참 먹음직스럽다. 감이나 사과처럼 한 입 베어 먹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시큼하고 떫은맛이 강해 날로 먹을 순 없고 차로 끓여 마신다. 모과차는 감기와 기침, 소화에 좋다고 알려졌다.

모과나무는 들판보다는 기관이나 주택 정원에서 잘 관리된 조경수로 흔히 볼 수 있다. 전국으로 따지면 충북 청주시 청원군에 천연기념물 제522호 모과나무가 있고, 그 외에 4그루가 각 지방의 시도기념물로 지정돼있다. 이들은 가슴높이(사람) 둘레가 3~3.5m로 수령도 500년으로 비슷하다.

이에 미치진 못하지만, 둘레가 2.6m에 이르고 나이도 300살로 기록된 모과나무 한 그루가 거제에도 있다. 1982년 거제시 보호수 마을나무 12-19-7-4-11에 지정된 사등면 지석리 장좌마을 모과나무다.

지석리는 거제시 추모의집이 있는 지역으로 거제시 행정지도상 망치산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가장 낮은 곳에 지석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북쪽 산기슭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부분 산지라 보호수로 삼을만한 큰 나무라면 마을 속에 있을 법한데 도무지 찾질 못하겠다. 관리대장에 나온 주소로 내비게이션을 따라가 보니 산 중턱이다. 산 아래서 올려다보니 밤나무, 소나무 등 온갖 나무가 빽빽해 어떤 머리채(수관樹冠)가 누구 것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다고 모과 열매만 알았지, 나뭇잎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면서 산을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노란 동그라미가 모과나무다.
이 나무를 포기하려는 차에 운 좋게 만난 마을주민의 도움으로 이 나무를 잘 아는 조 모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은 이 모과나무가 산속에 묻혀있기 너무 아깝다며 문화재로 등록해야 한다고 했다. 모과나무가 이렇게 큰 것도 처음 보고 열매도 누렇게 많이도 열린다고 했다.

어르신이 어릴 때는 집 옆에 있던 모과나무를 자주 봤었다. 아니 봤다기보다 지금의 전봇대처럼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마을을 떠나게 됐고 최근 귀향하면서 다시 보게 됐다. 너무도 당연히 없어진 줄 알았던 어릴 적 나무가 아직 살아남아 열매를 맺는 모습을 다시 봤을 때는 감개무량했다고 한다.

나무와 함께 산지 비탈면에 있던 어르신의 집과 이웃집은 모두 철거되고, 잡목과 넝쿨이 집터를 완전히 덮어버려 길을 개척하며 나무에 접근해야 했다. 어르신은 낫 한 자루를 휘두르며 거침없이 잡목을 베어나갔다.

그 빽빽한 잡풀 속에서 신기하게도 모과나무 주변은 풀이 나지 않았다. 오래전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에 고사를 지내면서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놓은 덕분이다.

험한 산속에서도 모과나무는 매끈한 피부를 자랑했다. 녹색과 노란색의 얼룩덜룩한 무늬에 윤기가 흘렀다.
나무 아래는 잘 익은 모과가 떨어져 달콤한 향기를 뿜어냈다. 모과는 잎이 다 떨어질 때 향이 가장 좋다고 한다.

안타까운 점도 있다. 다른 보호수와 달리 거제시가 세운 안내판도 없을뿐더러 사실상 수십 년을 이 상태로 방치됐다.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나무를 찾지 못했을 정도로 잡목이 우거졌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제단이 바닥을 덮고 있어서인지 모과나무의 뿌리가 매우 약해 보였다. 썩은 부분을 들어내자 나무 속이 텅 비었다. 소중한 자연 문화재 하나를 지키기 위해선 당장 전문가를 불러 건강상태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어르신과 기자의 발걸음 뒤로 다시는 누가 올지 전혀 기약할 수 없기에 이 나무를 두고 떠나는 마음이 무겁다. 억세고 질긴 초록의 생명이 다하는 겨울쯤에 이 나무를 다시 찾아봐야겠다.

▲ 밑동의 썩은 부분을 들어내니 나무 속이 비어 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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