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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이 물 솟으면 비가 온다네열일곱 번째 나무-동부면 부춘마을 느티나무

동부면 부춘마을 길목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는 참말로 희한하게 생겼다. 기둥이 되는 큰 줄기가 없고, 뿌리에서부터 새총처럼 양 갈래로 줄기가 솟았다. 어느 쪽이 본줄기인지 알 수 없게 굵기도 비슷하다.

두 개 줄기는 썩 굵지 않다. 반면 줄기가 갈라서는 밑동의 굵기는 능히 역대 섬나무들을 웃돈다. 거제시 보호수 관리 대장에는 흉고(사람 가슴 높이) 둘레가 6.4m로 기록돼 있다. 줄자로 직접 재어보니 7.1m에 이른다. 역대 최장(最長) 길이다.

그러나 나이는 둘레만큼 많지 않다. 관리 대장에 200년으로 기록돼 있고, 마을 주민들도 그쯤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취재 경험에 비추면 대게 마을 주민들은 관리 대장 기록보다 50년에서 200년 정도 많게 알고 있다. 이 마을처럼 기록과 구전이 일치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수관(樹冠 나무의 가지 부분) 폭은 기록된 20m만큼 넓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양 갈래로 자란 줄기가 눈에 띄게 기이할 뿐이지 나무의 전체 수형(樹刑)은 딱히 훌륭한 편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줄기가 굵지 않아 노거수에서 뿜어 나오는 고고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지도 우산처럼 사방으로 펼쳐지지 않고, 바람 부는 대로 쏠려 기품이 다소 떨어진다.

그래도 역시 밑동만큼은 거대한 바위처럼 묵직하다. 그래서 오히려 위아래가 조화롭지 못한 구석이 있다.

마침 나무 아래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올해 84세로 62년 전 22살에 동부면 산촌마을에서 시집왔다. 시집 올 때 마을 어귀에 선 이 느티나무를 보고 참 좋다고 생각했단다. 그때는 밑동이 지금보다 컸다.

그런데 한 30년 전부터 병이 들더니 속부터 썩어나가기 시작했다. 10년 전쯤에는 거제시에서 나무전문가를 불러 밑동을 절반 이상 파내고 충전재로 채워 넣었단다.

보호수 관리 대장에 따르면 1985년 7월 생육상황과 병해충 외상을 점검했을 때는 건강이 양호했고, 1993년에 생육불량인 가지를 제거했다. 1998년 나무 아래 덱(deck)을 설치했고, 2004년 외과수술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할머니의 기억이 거의 정확한 셈이다.

할머니가 옛 기억을 더듬어 지팡이로 허공에 나무의 원래 형태를 그렸는데 지금보다 대략 1.5배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의 다른 주민에 따르면 나무의 병이 깊어진 원인은 동네 아이들이다. 나무는 오래전부터 속이 썩어 들어가 밑동이 크게 파여 사람이 들어갈 만큼 큰 굴이 생겼다.

요즘 아이들이 집안에서 이불로 작은 은신처를 만들어 놀 듯 당시에도 동네 아이들은 나무굴을 은신처 삼아 자주 모여 놀았다. 굴만이 아니라 펑퍼짐한 바윗돌처럼 올라타기 쉬운 이 느티나무는 놀거리가 딱히 없던 그 시대에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굴 안에 들어앉아 불까지 피웠는데 결국 나무에겐 커다란 해가 되고 만 것이다. 마을 주민은 그 당시 꼬마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 나무 속에서 놀아봤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다시 할머니의 얘기로 돌아와, 할머니가 시집올 때 이 나무에 얽힌 독특한 마을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늦은 음력 5월에 모를 심었다고 한다. 모내기철이 되면 동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우르르 나와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 당시엔 마을주민도 꽤 많았다고 한다.

할머니도 모를 심으러 나왔는데 난데없이 동네 아낙네들이 느티나무에 절을 시키더란다. 모를 심기 전에 그해 마을에 시집온 각시들이 나무에 절을 해야 흉이 없다는 것이다. 마을 아낙들은 절을 안 하면 벌금을 받아야 한다고 농담도 했다.

동부면지에는 부춘(富春)마을은 숲이 울창한 노자산 아래 자리한 덕분에 물이 풍부해 가뭄 걱정 없는 ‘부촌(富村)’이란 뜻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고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 느티나무의 기상청 역할은 다른 마을 나무들과 성질이 조금 다르다.

지난 호에 소개한 오량나무 느티나무는 잎이 동서남북 중 어느 쪽으로 먼저 나느냐에 따라 풍흉을 점쳤다. 반면 부춘마을 느티나무는 잎이 나는 방향에 따라 모 심을 순서가 정해졌다. 동쪽에 잎이 먼저 났다면 그쪽 논에 먼저 모를 심는 것이다. 나무가 모심는 순서를 정해준 셈이다.

또 나무줄기 가랑이에 물이 솟으면 곧 비가 온다는 뜻이므로 모내기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부춘(富春)이란 이름대로 흉작은 큰 걱정거리가 되지 못한 모양이다.

부춘마을은 동부면 오망천 다리를 건너 마하병원 방면에 있다. 병원을 지나 왼쪽 들판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마을 어귀에서 이 느티나무가 양팔을 들고 맞이해 줄 것이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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