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I ♡ GEOJE
거제 1호 천연기념물을 기억하라두 번째 나무-하청면사무소 앞 느티나무

▲ 1966년 천연기념물 제181호에 등록됐다가 가치를 상실해 71년 해제된 하청면사무소 앞 '하청의 느티나무'와 천연기념물 알림 표지석.
하청면사무소 앞 하청리 666번지에 볼품없는 정자수 두 그루가 있다.

큰 나무는 흉고(胸高 사람의 가슴높이) 둘레를 줄자로 재어보니 약 510cm에 달해 한때는 찬란한 녹음을 자랑했겠다. 그러나 지금은 줄기와 가지가 대부분 썩어 문드러져 속이 텅 빈 몸통 껍데기만 남았다.

서편 줄기 일부가 살아남아 근근이 서 있는 나무를 커다란 시멘트 지지대 세 주가 지탱하고 있다. 고사(枯死) 직전에 처했음에도 온힘을 다해 가지와 잎을 뻗치는 생명력이 경이롭다.

옆에 작은 나무는 큰 나무가 죽을 것을 대비해 심은 어린 대체목인데 먼저 목숨이 다했다. 말라붙은 가지가 낙엽 지듯 툭툭 떨어져 바닥이 어지럽다. 한 주민 말로는 3년 전쯤 벼락을 맞은 것이 원인이었단다.

추측컨대 마을 복판에 마땅한 거름 없이 목숨을 부지하던 늙고 어린 두 나무는 서로 영양분을 뺏으려 치열한 사투를 벌였고, 결국 작은 나무가 버티지 못했을 터다.

큰 나무는 거제도 제1호 천연기념물이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66년 8월 25일 ‘하청의 느티나무’란 이름으로 제181호에 등록됐다가 71년 9월 8일 해제됐다. 표지석이 아직 나무 앞에 세워져 있다.

2009년 5월 발행한 ‘하청면지’에는 이 나무에 대해 “지정 당시 수고 15m, 흉고 둘레 9m, 수령 600여 년이었으며, 그때 생존한 느티나무로는 전국 최고령으로 추정됐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지정 이후 나무 속이 불타 껍질만 살았다가 1970년 7월 11~20일 태풍 ‘루비’가 덮쳐 원형이 크게 망가졌고, 다음 해 잎이 나지 않아 죽었다고 판단해 천연기념물을 해제했다. 73년 한 가지에서 차츰 새잎이 돋아났으나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더 예전의 기록도 있다. 1983년 2월 25일 거제군이 발행한 ‘내고장 전통’이란 책은 “천연기념물 등록 후 1959년 추석 ‘사라호(사라)’ 태풍으로 세 가지 중 큰 가지가 부러졌고, 높이 30m의 가지 위가 말라죽기 시작해 보호했으나, 원형 소생이 불가능하다 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하고 말았다”고 전하고 있다.

시기와 관련해 실제와 안 맞는 부분이 있지만, 나무의 배경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나무뿌리 부분의 둘레가 12m나 돼 거제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 100m 떨어진 하청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까지 뿌리가 닿았으며, 나무가 있는 신동마을 전체 아래에 뿌리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또 봄에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면 풍년이고, 별 수 없으면 한해(寒害)가 든다고 점치기도 했단다.

특히 나무에 대한 글쓴이의 소회가 눈에 띈다. 그는 “이 역사 깊은 정자나무는 마을 한복판에서 500년을 지냈지만, 사람이 많이 운집해 사는 까닭에 분뇨나 오물 등 염분이 뿌리에 스며들어 쇠퇴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으로 천연기념물을 해제했다”면서 “들판이나 산록에 있었으면 매연이나 오물의 피해가 없었을 것인데 안타깝게만 여길 뿐이다”라고 글을 남겼다.

나무는 천연기념물 해제 후 사람들 관심 밖으로 내쳐져 오늘날 거제시 관리 노거수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시나 하청면, 어디에서도 영양제를 투여했다는 기본적인 관리조차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이제 이 나무는 오랜 목생사(木生事)를 곧 마감한다. 하청면은 거제시의 면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주민복지를 위해 올 봄 이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다목적회관을 지을 계획이다.

면 관계자는 “마을 수호목이었던 느티나무를 가공해 표지석과 함께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청의 느티나무’는 줄기가 꺾이고, 속살이 불타는 시련에도 썩은 몸뚱이에서 새잎을 틔웠다. 삶을 향한 집념과 의지가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힘이 됐을 것이다.

이 볼품없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푸른 생명력을 다시 볼 순 없지만, 한때는 거제 1호 천연기념물이었고, 전국 최고령 느티나무였으며, 한 마을을 떠받친 거제 최대 거목(巨木)이었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더 많은 사람이, 더 긴 시간 기억해줬으면 한다.
▲ 속이 텅 빈 상태로 생명이 붙어 있는 모습. 왼쪽은 2013년 7월, 오른쪽은 1월 현재.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행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