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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산목이 최고로 좋다”열여덟 번째 나무-장목면 구영 팽나무

장목면 구영마을은 황포마을과 함께 거제도 최북단에 자리하고 있다.

거가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진해 용원을 잇는 카페리(car ferry)가 있어 부산을 오가는 사람들로 꽤 북적였던 곳이다. 카페리가 운항을 중단하자 구영마을은 다시 외지인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아득한 땅끝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로 조금만 들어가 보니 낮은 지붕들 위로 팽나무의 짙은 녹음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나무는 마을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커다란 그늘을 주변 집들에 드리워 초여름 열기를 식혀주고 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육각형의 덱(deck)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주변으로 다시 벤치인 듯한 석조 펜스가 절반 정도 둘러 있다.

나무 밑동을 둘러싸고 있는 덱은 걸터앉으면 나무를 등지고 바깥을 보게 된다. 그런데 만든 지 꽤 오래돼 보이는 이 석조 벤치는 바깥을 등지고 나무를 향해 앉게 돼 있다. 이것으로 미뤄보아 예전엔 나무를 발언대 삼아 주민 모임이 잦았던 모양이다. 마을 중심에 있는 장목면 대금마을 팽나무(섬나무 4호)도 나무를 향해 덱 스탠드가 지어져 있다.

섬나무 18편에 이르러 대략 정리되는 지역 특징은 어업이 발달한 거제 북동쪽은 노거수가 마을 한복판에 자리해 광장 역할을 하고, 농업이 발달한 서남쪽은 들판이나 마을 입구에 외따로 있어 기상 관측이나 농사 휴식처로 이용된다. 표본이 매우 부족한 가설이지만 향후 취재를 거쳐 거제 노거수의 지역별 특징을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본론으로 돌아와 나무 옆 경로당에서 노랫가락이 박수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 흥을 깨고 할머니들에게 나무의 내력을 물었다.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막힘없이 “우리 당산목이 최고로 좋다”, “어딜 가도 이런 나무가 없다”며 칭찬 일색이다.

나무 나이는 200살이 넘었다고 했다. 거제시 노거수 현황엔 150살이라고 돼 있고, 장목면지에는 250살로 기록돼 있다.

한 할머니가 20대 초반 구영마을로 시집왔을 때 옆집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당시 나무와 키가 비슷했다고 한다. 그때는 나무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나무 뒤로 마을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 육지가 늘면서 나무는 지금처럼 마을 중심을 차지하게 됐다.

최근 나무로부터 400여 미터 떨어진 집에서 창고를 지으려 땅을 파보니 이 나무뿌리가 지나가고 있더란다. 비단 이 집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뿌리나 종묘(種苗)가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주민 대부분은 나무가 마을을 떠받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나무는 당산목, 수호목으로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설이나 추석 명절은 물론이고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도 이 나무를 찾아 제를 올렸다. 면 체육대회에 출전하는 청년들도 나무에 술을 올렸다.

마을 아낙들은 사물놀이패를 꾸려 정월 보름날 한바탕 풍악을 올렸다. 그날에는 이장댁을 중심으로 떡과 탕국, 과일, 생선, 밥, 나물 등을 차리고 술을 올렸다고 할머니들은 생생히 기억했다.

이제는 마을에 매구(꽹과리의 경상도 방언) 치고, 장구 멜 사람이 없어 재작년부터 중단됐다. 전통을 이어갈 다음 세대가 마을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나무는 쉼터 역할도 못 하고 있다. 나무에 자꾸 벌레가 생겨 그 아래에 앉질 못하는 것이다. 한 달 전에도 거제시에서 방역했는데, 그새 또 비리(진딧물의 경상도 방언)가 들끓었다.

나무그늘에 앉질 못하니 경로당으로 몰리는데 이마저도 시설이 낡아 여름엔 찜통이나 다름없다. 경로당 및 마을회관이 현대화되는 요즘, 구영 경로당은 수십 년 전 지어진 그대로다.

노인들은 에어컨 설치는커녕 방충망 하나 교체할 여력이 없어 오매불망 거제시 복지행정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다. 나무 소개와 더불어 이곳 주민의 목소리도 함께 전해본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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