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I ♡ GEOJE
그들이 산골에 사는 이유일곱 번째 마을-동부면 평지마을

▲동부면 연담삼거리에서 학동 가는 길에 있는 평지마을
몽돌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동부면 학동은 거제 동남부 지역의 교통 요충지이기도 하다. 해안선을 두르지 않고 중심부(고현동)로 가로지르는 길은 인근에 이곳밖에 없어서다.

노자산 동쪽 허리를 타고 넘는 이 길을 학동고개라 부른다. 고개 언덕배기에서 바다 반대편인 북쪽으로 내려가면 가파른 산골에 자리 잡은 마을 하나가 있는데 ‘평지마을’이라 한다.

길가에 소소하게 차려놓은 임산물 판매장이나 식당, 펜션 등이 있는 곳이다. 지난해 8월에는 학동케이블카 착공식이 열려 이목이 집중됐었다.

평지마을은 유명관광지의 길목이긴 하지만 딱히 차를 세울만한 관광요소가 없기 때문에 그저 차창 밖의 산림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취재차 학동이든 해금강이든 동남부권 관광지를 더러 찾기에 이 마을을 그만큼 지나쳤었다. 예전에 민박 간판이 드문드문 있던 풍경이 기억에 있어 숙박이 필요 없는 현지인으로서는 관심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평지마을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이번 마을탐방을 통해 낡고 초라한 표지석 뒤 숨겨진 이 마을의 옹골진 내공(內功)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선 마을 구경부터 해보자. 마을은 고현동과 학동을 잇는 지방도1018호선(거제중앙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뉜다. 동부면 연담삼거리를 지난 뒤 학동고개까지 평지마을이라 보면 된다. 면적이 꽤 넓은 편이다.
하지만 집이 흩어져 있어 가구 수가 많아 보이진 않는다.

학동 고개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부분에 ‘평지’ 버스정류장과 녹색페인트로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이 있어 이쯤이 그나마 집이 가장 밀집된 곳으로 보인다.

도롯가에는 널찍한 마을 주차장이 있고, 놀이터가 붙어있다. 한적한 마을에 어린이 시설인 놀이터가 있다는 게 눈길을 끈다. 그러나 기구는 낡고, 온통 잡초가 무성해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다.

주차장 옆으로 난 길을 통해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보니 80~90년대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 부서진 담벼락과 인적 없는 낡은 집, 켜켜이 쌓아 올린 장작 등 이곳은 개발이 미치지 않은 모양이다. 고라니 한 마리가 어느 집 마당에서 제집처럼 풀을 뜯는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길은 아스팔트 도로로 바뀐다. 계속 가면 고개 넘어 혜양사를 지나 동부면 부춘마을로 이어진다. 도로 양쪽 산기슭에는 오토캠핑장과 황토찜질방이 들어설 모양이다.

마을을 에워싼 임도 주변에는 탁구공만한 꽃뭉치가 가득 피었다. 이는 한지의 원료인 삼지닥나무로 지금이 한창 꽃 필 시기다.

마을 이름에는 두 개의 유래가 있다. 마을 이름을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동부면 산촌과 바뀌었다는 설이다. 그래서 들이 ‘산촌(山村)’이 되고, 산이 ‘평지(平地)’가 됐다고 전해진다.

다른 하나는 평평한 종이를 만드는 삼지닥나무를 공급했다는 의미에서 ‘평지(平紙)’이다. 이는 닥나무에서 비롯된 추측일 뿐 근거는 없다.

마을 위쪽에는 아직 민박 간판이 몇 군데 남아 있다. 하지만 장사를 접은 지 오래다. 어느 80대 토박이 할머니네는 민박이 시원찮아 표고버섯 농사로 전업했다. 이웃 언니네에 가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쑤시지만, 일거리가 있어 살 만하다고 했다. 또 마을에 집이 늘고 사람도 늘어 참 좋다고 했다.

▲도롯가 주차장 옆으로 마을길이 이어진다.
▲민박집은 대부분 장사를 접었고, 펜션이 들어서고 있다.
▲평지마을은 제집처럼 드나들며 밭작물을 싹쓸이하는 고라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한지 원료로 쓰이는 삼지닥나무가 마을 숲에 가득 꽃을 피웠다. 이 나무가 많아서 한때 종이를 만들었거나, 종이 원료를 공급했던 곳이라고 추측하는 주민도 있다.

표고버섯이 우리 마을 효자
▲박귀화 이장
집집이 쌓아놓은 통나무들이 눈에 띈다. 나중에 만난 박귀화(49) 이장에 따르면 이는 표고버섯 종균을 심기 위한 나무들이다.

3~4월 이맘때 나무에 종균을 심으면 1년 6개월 뒤인 내년 가을에 수확한다. 일 년에 봄·가을 두 번 수확하는데 거제에선 최대산지라고 자부했다.

특히 산에서 기르는 노지재배이기 때문에 향과 맛이 좋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농협 입찰을 통한 판로가 대부분이지만, 한 번 맛을 본 고객은 다시 찾는 경우가 많아 직거래나 택배거래도 잘 되는 편이다.

봄·가을엔 표고, 겨울엔 고로쇠 채취가 마을의 주요 소득원이다. 그 수입이 만만치 않다. 요즘 농가에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 1차(농림수산업)·2차(제조 가공)·3차(서비스) 산업을 더한 6차 산업이 유행인데 이조차 번거로울 정도다.

다만 시골이라 인력이 부족하고, 날씨의 영향이 큰 작물이라 노력만으로 되는 사업이 아니란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1년 6개월 잘 기르다가도 수확 시기에 큰비가 오면 향이 죽고, 모양이 틀어져 상품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재밌는 것은 그런데도 재고 없는 장사가 버섯 농사라고 한다.

원래 평지마을은 인삼이 유명하다고 동부면지는 소개하고 있다. 지역특산물이 인삼에서 표고로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 박 이장의 시아버지로 추측된다. 그는 진주농대(현 경상대)를 졸업해 지역에서 처음으로 표고를 재배하고 보급했다고 이장은 소개했다.

▲마을 주변 산에 버섯 재배가 한창이다.

휴양·주거지로 재발견
표고버섯 덕분에 주민의 평균 소득 수준이 높아진 평지마을은 이 사정을 아는 은행에선 ‘부채 없는 마을’로 통한다.

그런 데다가 조용하고 쾌적한 숲 속 환경 덕분에 인구도 늘고 있다. 2011년 3월 말 기준 66세대 149명에서 5년이 지난 올해 3월은 82세대 162명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 1년간 12세대 7명이 늘었다.

괄목할 만한 변화는 도로 동쪽 산속에서 볼 수 있다. 숲길을 따라 각양각색의 펜션들이 줄을 잇는다. 도로 옆 산속에 이만한 펜션 단지가 있다는 게 놀랍다. 숙박이 필요 없는 현지인만 잘 모르지 오히려 타지 사람들은 먼저 알고 온단다.

공기가 좋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볍고, 산물로 머리를 감으면 린스로 감은 것처럼 부드럽다고 감탄할 정도다. 특히 학동 해변은 관광·피서객이 몰려 시끄럽고 번잡하지만, 여기는 해변과 가까우면서도 외부와 분리된 숲 속이라 가족이나 단체 단위로 많이들 찾는단다.

펜션 거리가 끝나면 분지(盆地) 형태의 전원주택 마을이 나타난다. 새로 지은 집들은 주로 거제 밖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고급스러운 외관과 널찍한 마당, 외제차 등 부유한 풍경에 뭇사람들은 평지의 ‘베버리 힐스(미국 LA의 고급 주택가)’라고 부른다.

학동 가는 길에 보이는 작은 산골 마을. 알고 보니 표고버섯 최대산지로 소득이 높고, 청정한 환경 덕분에 이미 적잖은 발길이 오가고 있었다.

박 이장은 “지나가는 길목에 불과했던 우리 마을은 차에서 버리는 쓰레기들로 골치가 아팠다. 지금은 목적지가 되면서 쓰레기가 줄고, 특산물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앞으로 머무는 마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도로를 기준으로 서쪽 마을은 안이 깊은 주머니 형태로 입구엔 펜션이 줄을 잇는다.
▲주머니 안쪽 양지바른 곳엔 고급주택들이 작은 마을을 형성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행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