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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들어도 못떠나는 이유두 번째 마을-둔덕면 술역마을

▲ 술역 버스정류장
통영을 마주 보고 있는 둔덕면 술역리는 북쪽에서부터 내평·술역·호곡·녹산 4개 마을이 지방도 1018호선을 따라 줄지어 있다. 거제도 최서단 바다에 떠 있는 화도 역시 술역리에 속한 마을이다.

이번에 찾은 마을은 술역리 술역마을이다. 마을 선정은 제비뽑기로 정해진다. 거제시에는 자연마을 목록이 따로 없으므로 이를 가늠할 수 있는 마을 이장 명단을 추려 무작위로 뽑는다. 아는 마을, 취재하기 편한 마을만 찾게 되는 나태함을 피하기 위해서다.

술역마을은 현재 88가구, 189명(남 103, 여 86)이 산다. 가구당 2명꼴로 사는 셈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주민들에게도 들은 바 젊은 세대는 거의 없다.

마을에 대략적인 현황을 알기 위해 문굉용 이장을 만났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도 마을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흔쾌히 달려와 만나줬다.

문 이장은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바닷가에 있는 마을 어촌계 컨테이너로 데려와 난로를 쬐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갑자기 찾아든 손님에 불편한 기색 없이 맞아준 그들에게서 시골 인정을 느꼈다.

그러나 주민들은 하나같이 “우리 마을은 소개할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저 농사 반, 어업 반인 작은 마을이라고 했다. 계속 질문을 던졌더니 그제야 말이 꼬리를 물었다.

술역마을은 옛날 수역이라 불렀다. 물가에 있는 역(驛)이란 뜻인데 그때는 현재 거제대교가 있는 오량역만큼이나 통영과 왕래가 잦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당시에는 통영과 술역을 오가며 짐을 나르던 사공이 먹고살 만했는데 농사 거름으로 쓰기 위해 똥까지 나르던 것이 기억난다며 주민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명성을 뒤로하고 지금은 반농반어라 해도 둘 다 시원찮은 편이다. 쌀농사를 짓는데 규모가 작아 팔기가 어렵고, 자급자족에 그친다. 요즘엔 쌀값이 워낙 떨어져 파는 게 손해라고 할 정도다.

어업은 더 심각하다. 술역마을은 주변 마을과 같은 해안선에 있으면서도 수심이 가장 낮다고 한다. 한번 물이 빠지면 뭍에서부터 100m도 넘게 갯벌이 드러난다. 이 때문에 육지 가까이에서 물고기 잡기 힘들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 선착장에 배를 대는 데도 불편하다.

갯벌이 있으니 어촌체험마을도 생각해봤단다. 그러나 숙박·식당 등 관광시설이 전혀 없는 마을이라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바다 맞은편 통영은 한산만을 끼고 도시가 발달하다 보니 관광 분야에서 작은 마을이 경쟁 상대가 될 리 없다.

주민들은 자구책으로 갯벌을 메워 수산물을 취급하는 상가를 조성하겠다고 했으나, 행정에서는 승인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러기를 10년째, 마을 인구가 전체적으로 늙어감에 따라 앞으로는 이를 요구할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술역마을엔 고충이 하나 더 있다. 도로 맞은편 산 쪽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는다고 하자 해당 부지에 땅을 가진 주민들은 2006년께 땅값의 10%를 계약금으로 받고 토지 매각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 뒤로 진행이 더뎌지자 주민들은 불안해졌다. 이미 계약금을 받은 상태라 땅을 팔지도 못하고 수년째 묶여 있는 것이다. 돈은 이미 써버렸기에 사업이 무산돼도 돌려줄 돈이 없어 걱정이다. 답답한 마음에 최근 주민들이 골프장 사업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진행 중’이라는 답만 들었다고 한다.

술역마을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마을이었다. 노동력을 쇠진한 이곳 주민들에게 스스로 살길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내평마을에 있는 굴 가공공장 덕분에 부녀자들이 생활비를 번다. 남자들은 농번기에 한참 기력을 쏟고 겨울이 되면 딱히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바다 양식을 하는 사람도 규모가 작아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적조 피해를 입어도 규모가 큰 업체 우선으로 보상해주기 때문에 잃는 것도 많다.

그래도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자랑거리는 마을 인심이다. 이는 굳이 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체감할 기회가 있었다.

이튿날 술역마을을 한 번 더 찾았다. 동네 안에서는 마을 주민을 만나기 쉽지 않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렸더니 마침 할머니 두 분이 버스에서 내렸다.

무거운 짐을 이고 가려기에 냉큼 따라붙어 짐을 빼앗아 들었다. 할머니들에게 짐을 들어줄 테니 마을 이야기 좀 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아들아 고맙다”면서 자양강장제 한 병을 건넸다. 할머니는 평소 굴 공장에 굴 까러 다닌다. 20일 꼬박 일하면 100만 원 정도 번다고 했다. 이날은 수요일이라 공장이 쉬기 때문에 둔덕농협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생선을 파는 친한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이었다. 집까지 시간이 짧았다. 할머니는 그냥 보내기 아쉬웠는지 커피 한잔 먹고 가라기에 염치 불구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 벽면에는 온통 가족사진이 가득했다. 유독 할아버지 사진이 많았는데 3년 전에 돌아가셨단다. 사진 속 나란히 선 마을 친구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러면서 어느새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밥이 없다, 반찬이 없다면서 어느새 인심 푸짐한 시골 밥상이 차려졌다. 할머니는 식사하는 내내 생전의 할아버지를 추억했다.

TV보고 더 놀다 가라는 말에 얼른 집을 빠져나왔다. 적잖이 아쉬웠는지 사탕이며 귤이며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넣었다.

먹고 살기 힘든 마을이라 해도 이만한 자랑거리가 있기에 떠나지 못하고 웃으며 사는 것 같다.
▲ 도로에서 술역1길과 2길이 나뉘고, 마을 골목은 대부분 3길이다.
▲ 쌀농사 반, 어업 반인 술역마을
▲ 도로 동편 논에 있는 소류지가 꽝꽝 얼었다.
▲ 선착장에서 본 술역마을, 어깨를 맞댄 노란집과 파란집이 인상깊다.
▲ 마을 대부분 부녀자들이 굴공장에서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
▲ 술역 마을회관 2층에서 내려다본 마을 모습
▲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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