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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맥박이 쉼없는 그곳세 번째 마을-장목 율천

▲ 율천마을 전경
연초에서 장목 가는 길은 세 갈래다. 국도5호선(거제북로)으로 하청을 지나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거가대로를 타거나 옥포-덕포 방향으로 해안가를 둘러가는 길이다.

세 번째는 연초에서 곧장 장목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연초댐이 있는 명동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장목면 행정구역인 율천(栗川)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가대로에서 거제휴게소가 있는 곳이 율천(주소지 기준)이다. 휴게소에서 바다 쪽엔 섬을 잇는 거가대교가 있고, 육지엔 들판 너머 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율천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첫인상은 비밀의 화원이다. 율천마을과 대금마을은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로 흐르는 대금천을 경계로 이웃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 사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바다에 민가가 집중된 대금은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는 반면, 산자락 평지에 마을을 이룬 율천은 어업 종사자가 한 가구도 없이 농업에만 치우쳐 있다.

이처럼 율천과 대금은 들판을 사이에 두고 산과 바다에 자리 잡았는데 거가대로가 큰 장벽이 돼 들판을 갈라놓는 바람에 두 마을은 서로 가려졌다.

기자는 업무 차 매주 시도13호선(옥포대첩로)으로 율천과 대금의 해안가를 지나는데 도로변의 대금만 봐왔지, 거가대로 너머 율천까지는 눈길 발길이 닿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거가대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보니 이름만 익숙했던 율천이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은 연초와 장목을 잇는 시도11호선(대금산로)을 중심으로 600여m의 일직선 구간에 발달해 있다. 이 구간의 남쪽 끝에는 표지석을 비롯해 율사모(율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세운 번영기원 기념비, 마을의 수호신이자 수문장인 돌벅수(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장승), 이 자리가 한때 당산 터였음을 알리는 솟대, 그리고 마을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故김희홍·김동건의 송덕비가 한데 모여 있다.

여기서부터 마을 곳곳을 시속 3km의 걸음으로 둘러봤다. 도로 양쪽으로 집들이 줄을 잇는다. 도로 왼편(명동→장목 방향)인 산 쪽으로 민가가 몰려 있다. 주택가엔 차가 다닐 만한 큰길은 별로 없고, 수레 하나 다닐만한 폭의 좁은 골목길이 주렁주렁 집을 잇고 있다. 집 사이로 틈틈이 고추나 파 등을 심은 밭이 보인다.

도로 오른편에는 도로변 주택 너머로 논이 펼쳐져 있다. 바다로 내뻗을 것 같던 평야는 거가대로에 막혔으나,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거가대교가 멋진 경치를 자아내며 아쉬움을 달랜다.

마을 가운데에는 구율포성이 있다. 안내판이 세워진 돌담은 성벽으로 보이는데 그 외엔 어디가 성벽이고, 어디가 돌담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저 이 작은 마을에도 문화재가 있다는 것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을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거제에선 더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주 오래된 흙집이 더러 눈에 띄는데, 이와 대비해 현대 양식의 세련된 집도 몇 채 보인다. 그 중간 단계인 벽돌로 쌓은 옥상집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흙집이란 흙과 나무 구조의 전통 초가 형태에 지붕을 슬레이트로 얹은 집을 표현하기 쉽게 말한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흙집엔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다. 보존 목적이라기보다는 개발 여지가 한참 모자라서다.

이는 마을 탐방 두 번째 날에 만난 김삼경(77) 씨가 마을을 소개하면서 무겁게 다뤘다. 김 씨는 율사모 회장이자 마을 개발위원장이다. 조선 시대 율천 출신으로 옥포만호를 지냈던 김형구와 앞서 말한 김희홍·김동건의 후손으로 장목면장을 지내다 공직에서 은퇴했다.

▲ 율천마을에서 바라본 거가대교
▲돌벅수와 번영기원 기념비
▲ 왼쪽부터 김동건 김희홍 송덕비
▲ 김삼경 마을개발위원장과 번영기원비

율천의 역사
먼저 김삼경 위원장의 마을소개와 장목면지로 율천의 유래를 살펴보자.

김 위원장에 따르면 율천은 예전 밤나무가 많은 포구라는 뜻으로 ‘밤개’라고 했다. 마을 뒷산이 밤이 잘 열리는 북서 방향에 있어 온통 밤나무로 덮여있었다고 전해진다. ‘개’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강이나 내를 이르는 우리말인데 여기선 포구란 뜻으로 쓰인 것 같다.

이는 김 위원장도 전해 들은 얘기로 아주 오래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930년 강원주 씨 집 뒤 대밭에서 발견된 석검과 돌도끼, 돌화살 등은 4세기 무렵 유물로 밝혀졌으며, 토기 등도 많이 발견됐으나, 일본사람들이 죄다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현재 75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는데 출토된 유물과 율천성(구율포성)을 미루어볼 때 지역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으로 많은 사람이 살아온 듯하다”고 추측했다.

장목면지에는 조선 인종(재위 기간 1544~1545) 때 이곳에 성을 쌓아 율포(栗浦)진을 설치했다고 나와 있다. 1688년 통제사 이세현이 율포진을 동부 율포로 옮긴 뒤, 장목 율포를 구밤개, 동부 율포를 신밤개라 했단다. 두 곳의 이름이 같아 1889년 장목 율포를 율천(川)으로 바꿨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구율포성에 설명을 덧붙였다. 둘레 340m 높이 3.3m 석성이며 동서남북에 문이 있고, 문과 문 사이에 망루를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성 안엔 밭이 있고, 성 주위로 마을이 형성됐다.

구율포성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북으로는 본진 역할의 장목진이 있고, 동남으로는 옥포·조라 양진이 있으며, 바다 건너에 부산포가 있었다. 외침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으며, 이웃진을 연결하는 통로역할도 컸다.

이처럼 거제 북단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율포진이 무너지면 장목·옥포·조라진이 위태롭고, 명동을 거쳐 내륙으로 급진해 연초, 하청, 고현읍성까지 위험하므로 길목을 지키는 진으로 중요성이 인정돼 한때는 종4품만호가 맡았다고 설명했다.

율천은 효자촌, 열녀촌으로도 이름났다. 전통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은 고장으로 문중 재실이 3곳 있으며, 구명순 부인과 정선 정 씨를 기리는 열녀 정려문이 각각 있다. 구 씨 부인 정려문은 고종 4년(1864년)에 세웠고, 기와지붕과 홍살문만 남아 있는 정려문을 1962년 8월 26일 상량식을 치르고 현재 모습으로 보수했다.

김 위원장은 “율천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보여주는 유물과 문화재가 실존하고 있음에도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이를 가꾸고 보존해 여러 사람이 찾게 함으로써 낙후된 마을 이미지를 되살리는데 힘을 써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구율포성
▲ 구씨 부인 정려문
▲ 전씨 부인 정려문

율천의 고충
앞에서도 말했듯 율천은 거가대로에 가려져 있는 마을이다. 용건이 있지 않은 한 외부인이 굳이 이 마을을 지날만한 일도 없어 보인다. 그저 대금산에 진달래가 필 때만 상춘객을 가득 태운 관광버스가 줄을 이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개발과 복지에 한참 뒤처져 있다.

차가 마주 다닐만한 길은 도로뿐이며, 그 외에는 대부분 골목길이다. 산과 물, 경치가 좋아 외지인이 택지에 눈독을 들여도 공사 차량이 드나들 길이 없어 매번 물거품이 되고 만다. 김 위원장은 집 지으려고 땅을 사놓고도 막상 공사 허가나 여건이 안 돼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여러 건이라고 했다.

게다가 경상남도 기념물 제206호인 구율포성으로 인해 주변에 건축허가를 받으려 해도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교통도 불편하다. 율천은 33번, 38번 버스가 들어온다. 33번은 양방향으로 각각 2시간마다 하루 8~9회, 율천이 회차지인 38번은 하루 3회 운행한다.

32번 버스는 33번과 경로가 똑같은데 율천의 맞은편에 있는 두모실을 거쳐 간다. 그래서 두 버스가 시간이 몇 분 지체되더라도 두 마을을 모두 돌아가면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할 수 있다.

현재 마을 일부 주민들이 이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데 두모실 주민의 의견도 모아야 하는 등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이처럼 여러모로 마을 발전에 방해물이 산재해 있다. 이에 가장 큰 책임은 행정에 있다는 게 마을 중론이다. 행정이 도시계획을 제대로 세워 마을길을 대대적으로 개선한다면, 이로 인해 주택이 늘고 인구가 늘면서, 마을에 생기가 돌고, 빛바랜 문화재들도 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논리다.

눈에 띄지 않는 작고 늙은 촌마을인데도 그곳을 떠나기보다는 스스로 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거제 전역의 작은 마을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웃의 관심이 더해진다면 분명 더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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