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사회
日 징용노동자상 관련 판결‥조각가의 항변

거제시에서 추진되던 일제징용노동자상 건립 추진이 한 차례 무산된데 이어, 법원의 관련 판결도 부정적으로 나오자 노동자상 제작을 맡아온 조각가들이 항변 입장을 보내왔다.

작가가 조선인 강제노동자의 조형물을 창작한 것에 대해 일본인을 만들었다는 반일동상철거를 외치는 자들의 손을 들어준 말도 안되는 부당한 판결에 분노를 표한다.

부당판결!

일본에서는 조선인징용자 소송과 일본군 성노예 그리고 조선인 차별에 관한 소송은 모조리 부당판결을 내렸다.

일제 당시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은 모두 판사들이었다.
해방 후에도 그러한 판사들은 살아남아 수많은 재판들 속에서
사실과 진실을 외면하고 정의를 외면하는 판결을 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표현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 세종대학교 명예교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기도 했으며, 정대협에 대한 류석춘 교수의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의 명예훼손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했다.

2023년 우리가 만든 징용노동자상이 일본인을 만들었다며 반일동상철거를 주장을 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들로서는 이 사건 노동자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위 사진에 나타난 일본인의 모습을 참고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한다.

‘참고를 했다는 상당한 이유’가 일본인을 만들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어 급기야 의견표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형물 설치를 막고 있다.
이는 명백히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작가로서 모욕을 느낀다.
작가의 창작물에 대한 해석을 멋대로 잣대를 대며
작가의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혐오와 역사부정을 하며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방해하고 왜곡하는 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우리의 징용노동자상의 시작은 오래되었다.

2013년 삿포로 일본인들이 우리를 찾아와 징용자상을 의뢰했었다.
이유를 물으니 일제하 징용노동자들이 많이 왔었는데 주로 한국, 중국, 대만인들이었다고 했다.
그들로 인해 삿포로가 논밭이 개간되고 저수지, 도로가 생겼고 삿포로가 지금처럼 잘살게 되었는데 한국, 중국, 대만인 징용 노동자들은 처참한 현실에 살았다고 했다.
하루에 만두 세 개로 살았고 갇혀 있었다고 했다.

삿포로 일본인들은 “우리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중국인 추모비를 세웠고 이제 한국인 추모비를 세우고자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지금의 노동자상을 의뢰하기 훨씬 이전이었다.
이 일은 진행되지 못했지만 일본의 양심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강압으로 강제 징용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788만을 넘었다한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일본 각지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해방 후 고향으로 운 좋게 무사히 돌아온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이, 무덤 없이, 흔적도 없이 일본 땅에 묻혔다.
일제 강점기 홋카이도의 슈마리나이, 비바이, 아사지노 등 댐과 도로, 공항 건설 노동 현장에서 강제 노력에 시달렸던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11만 5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우연히 홋카이도 광현사(光顯寺) 절에 위패가 모셔져 있던 것을 알게 된 일본 스님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 善彦), 이분은 중국인, 조선인 노동자 유해를 발굴해 고향으로 보내주는 일을 하셨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을 맞이하는 2015년, 일본의 양심적인 종교인, 학자, 청년들과 함께 18년 동안 유골을 발굴해 한국에 150여구의 유골을 한국에 보내준 당사자이다.

그는 ‘70년만의 귀향’이란 책 속에서 자신 또한 훗카이도로 이민 온 식민지 지배인의 자손임을 고백하며, 유골 발굴을 통해 망각을 강요당하거나 망각에 의존한 지난날을 극복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 후 매년 봄 한국을 방문하여 본인이 찾아 모셔온 조선인 유골이 묻힌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일본정부와 한국의 친일파들은 전범의 역사와 강제징용 노동자가 있었단 사실을 부정한다.
일본은 정의로운 나라이고 절대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나라가 아니며 그러므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는 일본인 노동자와 같이 후한 임금을 주었고 잘살았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징용으로 끌려갔던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감옥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조국에 돌아오는 것조차 어려웠단 것을 증언했다.

그 예로 여운택과 이춘식 등 은 1941~43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의 일본 공장에 강제동원돼 고된 노역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일제 패망 이후 여씨 등은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고 한다.

징용노동자상은 일제하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조형예술이다.
일본정부와 한국 친일매국세력은 강제징용 사실을 부인한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 70만명은 대부분 그 후예들이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의 의뢰로 2017년 처음 우리가 만든 노동자상을 세운 곳은 쿄도의 ‘단바망간기념관’이다.
이곳은 망간을 채취하는 광산이었는데 현재는 폐광이 되었다.

‘단바망간기념관’. 일제시대 강제연행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군수물자 생산에 필수적인 망간 채취를 위해 망간탄광에서 혹독한 노동 끝에 진폐증으로 목숨을 잃었던 사연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이자, 지금은 고인이 된 이정호 선생과 그 유지를 이어받아 기념관을 운영해온 아들 용식 씨의 혼이 담겨 있는 곳이다.
한국에도 번역 소개된 『재일조선인 아리랑』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일본이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인정해야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고 동남아시아의 평화로도 이어진다. 그러니까 기념관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협력을 부탁드린다. 그것 뿐이다. 한국에 있는 독립박물관 같은 것을 일본에도 세워서 일본 사람에게도 알려야 한다. 일본 사람은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역사 알려야 동남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된다 .. 교과서에서도 매스컴에서도 알리지 않았으니까 재일동포 차별이 없어지지 않고 동남아 평화도 실현되지 않았다. 일본 사람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 역사를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 이용식관장

조선인 광부였던 아버지의 무덤 대신 기념관을 지어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리려 했던 김용식씨는 광산을 학습장으로 지켜 오다가 예산이 없어 현재는 매각이 된 상태다.
그의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장비도 없이 어두컴컴한 굴에 들어갔는데 위험하거나 어른이 못 들어가는 험하고 구석진 곳에는 꼭 조선인 아이가 담당하였다고 한다.
늘 학대와 체벌이 있었다고 했으며 그렇게 살다가 40대에 진폐증으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본인처럼 아버님의 키는 180에 달했고 골격이 컸다고 했다.
그런데 진폐증으로 몸무게는 40킬로그램이었다고 했다.
아들인 본인도 광부 생활을 했는데 자신도 진폐증으로 투병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증언을 통해 어두운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당하는 청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덥고 습하고 어두운 탄광은 본인들의 암담한 현실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희망으로 살아냈을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함축적으로 하나의 인물에 담아 어두운 긴 탄광을 나와 햇살에 눈부셔하는 젊은 조선인노동자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노동자상을 설치하는 날 김용식 씨는 자신의 아버지와 너무 똑같았다고 우리에게 논물을 흘리며 손을 잡고 고맙다고 했었다.

1920년대 사진 속의 일본인을 만들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은 작가의 창작물에 대한 모욕이다.

반일동상철거를 주장하는 그들은 의견만 내는 것이 아니라 소녀상과 징용자상을 찾아다니며 또 세우려는 곳을 찾아다니며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을 거듭 모욕하고 혐오를 부추기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작가의 명예와 고인이 된 일제강제 노동자분들의 명예를 위해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급심에서 혐오세력들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서로 다른 판결이 그렇게 대법원까지 가고 결국 판결은 왜곡, 혐오의 자유에 손을 들어 주었다.

2023년 거제시에 세우려던 강제노동자상은 참혹했던 탄광에서처럼 어두운 창고에서 1년이 다 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거제시 결정은 강제 징용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여 그분들의 영혼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는 판단이길 간절히 바란다.

“기억하는자들이 사라지면 역사는 왜곡된다!” - 황현필 역사학자

2024년 3월 14일
거제강제노동자상 조각가
김서경 김운성 올림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