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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보상과 사회의 지속성재미 삼아 읽는 경제 이야기 : 화폐 ⑥

◐ 생각의 실마리(1) :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주의?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출간한 이후, ‘이기주의’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에 관한 논쟁이 하루 이틀 사이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마치 인간이 이기심만을 갖고 이를 충족시키려 하는 존재라는 인상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이기주의란 ‘유전자 수준에서의 이기주의’를 말한 것이고, 도킨스는 오히려 ‘개체 수준에서의 인간(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갖는 이타주의’를 설명해내는 데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유전자)≠(인간), 즉 유전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숱한 오해가 생겼습니다.

읽지 않은 이에게 어림짐작 당하거나, 일부 문장이나 표현만이 추출되어 그것이 그 책 내용의 전부인 양 왜곡·날조·오용 당해온 책은 참 많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기적 유전자』도 그 범주에 속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이용당한 책의 목록이 있다면 거기에 포함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다음 문장은 『이기적 유전자』 초판 결론에다 전면개정판 ‘보주’에 있는 번역어를 괄호 안에 넣은 것입니다. 도킨스의 진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유전자(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2005년,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30주년 기념판 서문에 이렇게 적어 놓기까지 했습니다.

“우리의 뇌는 ‘이기적 유전자를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정도로까지 진화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 즉 진사회성 동물인 인간이 유전자가 갖는 이기심(?)을 어느 정도 뛰어넘었다는 것일 테지요. 물론 완벽하게 이기심을 버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이것은 개인이 양심 또는 도덕 감각을 갖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진화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의 실마리(2)’에서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의 실마리 하나를 잡을 수 있습니다. 바로 양심과 도덕 감각입니다.

◐ 생각의 실마리(2) : 양심과 도덕의 기원

인간이 ‘양심’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현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현상이 부끄러운 일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죠. 오로지 인간만이 갖는 이것에 대해 많은 진화생물학자, 사회생물학자, 심리학자 등이 여러 가지 이론을 제안하였습니다만, 그 가운데 한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진화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Christopher Boehm)이 저술한 『도덕의 탄생(Moral Origins)』이란 책이 있습니다. 원제가 ‘Moral Origins : The Evolution of Virtue, Altruism, and Shame’이니 직역하면 ‘도덕의 기원 : 미덕, 이타주의, 수치심의 진화’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런! ‘화폐’ 얘기는 하지 않고 웬 ‘도덕의 기원’이냐고요?

지난 회 ‘화폐⑤’의 끄트머리에 필립 그리어슨(Phillp Grierson)이 『화폐의 기원』에서 화폐가 인명 보상(人命補償, wergeld)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 것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 내용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가 인명 보상으로부터 기원한 것이 맞다면, 인명 보상의 전(前) 단계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인류학의 거장인 크리스토퍼 보엠은 『도덕의 탄생』에서 우리의 ‘도덕 감각’이야말로 인간들이 집단 안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하죠. 그렇다면 인류라는, 매우 특이한 진사회성 동물의 사회적 진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걸까요?

이 책은 선행 연구자들의 논문뿐만 아니라 미개(?) 사회를 연구한 민족지학을 분석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미개(?)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포식자, 즉 무임승차자, 알파 유형의 불량배, 사기꾼, 도둑, 일탈자 등의 유형을 정리해서 보여줌과 동시에 이들에 대처하는 방식까지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 사진(동굴 벽화) 속의 인물은 10개의 화살을 맞고 숨져 있습니다. 집단 처형을 당한 모습을 그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리고 이 벽화는 스페인에서 발견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7,000년에서 12,000년 전의 시기에 그려졌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아하!’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역사 시대 이후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늘 등장하는 폭력적 불량배, 사기꾼, 기회주의자, 무임승차자, 도둑 등의 사회적 포식자들이나 일탈자들이 선사시대에도 존재했을 거라는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했던 겁니다. 다만, 관심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을 따름이었겠지요.

이들 사회에서 사회적 포식자들은 살인을 하기도 하고, 주술 또는 마법을 부리기도 하며, 누군가를 구타하고, 약자를 괴롭히며, 절도를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남을 속이고, 협동하지 않는 등의 일탈 행위를 합니다. 현대 사회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해 사회적 억압 또는 사회적 처벌이 뒤따르는 것은 ‘명약관화’이겠지요?

보엠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궁극적인 제재는 집단 전체가 나서서 범인을 죽이는 경우, 집단에서 선택된 구성원들이 범인을 살해하는 경우, 범인을 영구적으로 추방하는 일 등입니다. 가벼운 제재로는 공공의 의견 개진, 조롱과 창피 주기, 집단적 배척,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물리적 처벌이나 구타하기 등이 있습니다.

마들렌기(The Madelenian period) 또는 막달레안기(The Magdalenian period)로 불리는 약 17,000년에서 12,000년 전의 시기에 그려진 스페인 동굴 벽화는 집단 처형의 실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다 이러한 사례는 부시맨 족의 연쇄살인마가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처럼 보일 정도로 죽임을 당한 민족지적 기록과도 연결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근거로 보엠은 양심, 즉 도덕 감각은 사회적 처벌을 통해 진화했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선사시대의 인류는 사회적인 통제를 강력하게 활용하기 시작했고, 개인들은 반사회적인 경향을 보다 잘 억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서운 징벌이 존재했고, 개인이 집단의 규칙을 흡수해 내면화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정리하면 ‘사회적 처벌 → 집단 규칙의 내면화 → 양심의 탄생’이라는 순서를 밟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부끄러운 일에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 양심에 따른 자기 통제가 진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합니다.

분명한 점은 사회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처벌이 선행되었다는 점이죠. 이런 순서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도움을 받아 식량, 권력, 성을 비롯해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의 균형을 잡는 정교한 결정을 한다. … 이렇게 양심을 가지는 것의 인지적인 장점이 있다면, 쓸모 있는 사회적 결정을 하고 부정적인 사회적 결과를 피하도록 직접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쓸모 있는 사회적 결정’과 ‘부정적인 사회적 결과를 피하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사회가 이미 도덕 공동체로 진화했더라도 인간 사회의 다툼은 늘 벌어지는 법이고, 사회적 일탈자들은 언제나 태어나기 마련인 상황에서 말이지요. 역시 사회적 처벌의 효과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 인명 보상과 사회의 지속성(持續性)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적 복수’의 총화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면의 진실은 통념과는 사뭇 다릅니다. 만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의 실제 뜻이 ‘사적 복수’에 불과하다면, 복수의 악순환에 의해 그 공동체는 붕괴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 행위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즉 공동체가 지속·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집니다. 앞서 미개 사회에서 일탈자들을 처벌하는 여러 방법들도 공동체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지요.

시간이 더 흘러서 수의 개념이 생겨나고 약간의 계산이 가능해진 시기를 상정합시다.

이러한 때라고 하더라도, 부족 사회 또는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진 다툼 또는 일방적 가해 행위에서 한 사람이 타인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 그 ‘빚의 청산과 보복’을 당사자들의 혈연 집단에 맡겨 놓는 것이 타당할까요?

앞서 보엠의 연구 결과와 같이, 이런 경우 도덕 공동체로 진화한 사회는 ‘쓸모 있는 사회적 결정’을 내려야 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 조금 더 발전한 공동체라면,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를 통해 사회적 처벌 수위를 계산하는 일은 자연스럽습니다.

이 계산된 처벌 수위, 즉 인명 보상의 상징적 등가 계산의 예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표현된 것이겠지요.

더 나아가 인명 보상에 대한 계산은 필립 그리어슨(Phillp Grierson)의 말처럼 “노예, 소, 가죽, 과일처럼 셀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것(countable-usable)일 수도 있고, 또 이빨, 조개껍데기, 진주 등과 같이 셀 수도 있으면서 장식할 수 있는 것(countable-ornamental)”으로 발전했다고 보아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또한 먼저 셀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계산화폐가 가장 먼저 나타나야 한다는 논리 구조를 완결시킵니다.

그리고 인명 보상(wergeld)이 양심과 도덕 감각이 제도화된 도덕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시스템이라면, 인명 보상표의 등장은 자연스럽고, 문자의 발명 이후에 성문법(成文法)으로 이를 규정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화폐의 기원 중 한 가지는 분명 ‘법’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화폐의 기원을 생각할 때면, 사회를 유지하고 작동시키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점을 우선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를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양심 또는 도덕 감각이고, 그것이 사회적 처벌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면, 우리는 도킨스가 거듭 강조했던 다음의 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단 전체의 붕괴를 막으려면 이기적인 욕심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말은 진실에 가깝지만, 과연 모든 인류가 그랬을까요? 그들,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난 지배자들이 꿈꾸었던 사회의 지속성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원했던 계산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회에 계속>

고영주 / 거제경실련 정책위원장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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