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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교환은 인간답지 않은 일!재미 삼아 읽는 경제 이야기 : 화폐 ③

◐ 인간의 본성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가 있고, 정치적 성향에 좌파와 우파가 있는 것처럼 보통은 루소파와 홉스파로 나뉩니다. 당연히 중도적 견해를 취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요?

루소파는 장자크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가정했던 대로 인간의 본성이 선하고, 이타적이며, 호혜적인 쪽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성선설에 비견할 수 있겠습니다. 홉스파는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서술한 대로 인간의 본성이 악하고, 이기적이며, 잔인하다고 믿는 부류입니다. 말하자면, 성악설인 거죠.

그런데 이런 관점의 차이는 사람들이 내집단(ingroup)에 속해 있는 친밀한 이웃들과 외집단(outgroup)에 속한 낯선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내집단 안에서도 나쁜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내집단 구성원들은 친밀하고, 상호 책임을 지며, 호혜적이고, 대체로 평등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걸 전제로 하죠. 반면 외집단에 속한 자들은 낯설고, 경계심이 생기며,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이기도 하고, 우리보다 열등하며, 위험할뿐더러 그 관계는 일회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내집단을 선호하고 외집단을 차별하는 것은 거의 인간적 본성에 가까워 보입니다. 좀처럼 바뀌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래전 인류가 너른 대륙에서 띄엄띄엄 살 때 형성된 심리가 여태까지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고개가 끄덕여지시죠? 이렇게 밑밥(?)을 깔아 놓겠습니다.

◑ 헨리와 조수아 그리고 인간다움

지금은 경제라는 게 ‘돈벌이’로 이해되고 경제활동이란 ‘돈을 버는 활동’쯤으로 치부되지만, 고전적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했던 것처럼 경제란 ‘살림살이’이며 경제활동이란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일’ 정도라고 보시면 거의 맞아떨어집니다.

그렇다면 6,000년 전의 사람들이나 그와 비슷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했을까요?

첫 번째 장면, 우선 ‘화폐 ①’에 등장한 그 마을이 북아메리카 ‘이로쿼이 연맹’의 한 부족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이곳은 중요한 경제 시설이 공동 주택이고 그곳에 대부분의 재화를 비축해 놓습니다. 관리와 할당은 주로 여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담당하고요.

이 마을에 헨리가 살고 있다면, 헨리는 필요한 구두(?)를 어떤 방식으로 갖게 될까요?

헨리는 아내에게 구두가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아내는 마을 여자들에게 남편인 헨리에게 구두가 필요함을 알립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공동 주택에 보관되어 있던 들소 가죽을 꺼내 조수아에게 주면서 구두를 짓게 합니다. 다 만들어진 구두는 헨리나 헨리의 아내에게 전달됩니다. 끝.

이런 마을에 사는 헨리는 구두를 얻기 위해, 즉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감자를 원하면서 구두를 갖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사진 출처 : SBS 창사 특집 4부작 「최후의 제국(2012.11.18. ~ 2012.12.09.)」 화면 캡쳐

두 번째 장면, 헨리와 조수아가 브라질의 남비콰라 족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남비콰라 족에게 구두가 필요할 리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합시다.

헨리가 조수아에게 가서 “정말 멋진 구두로군!”하며 칭찬(?)을 합니다. 그러면 조수아는 “아니,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너 가져.”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흘러 1년쯤 지난 어느 날, 딸 결혼식 마을잔치를 준비하던 조수아가 헨리 집에 가서 “자네 돼지가 살이 참 통통하네?”라고 말을 건넵니다. 구두를 받았던 걸 기억하는 헨리는 “하하. 끌고 가게”라고 말합니다. 끝.

이런 마을 또는 부족은 친족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친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친밀한 관계에 있어서 서로를 잘 알고 있겠지요? 무엇보다 이들은 남은 일생까지 한마을에서 살면서, ‘연대하고, 상호 부조하고,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관계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장면, 저와 가까운 후배 중에 HGJ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친구가 낚시를 가서 30cm짜리 참돔을 여러 마리 낚았고, 그중 한 마리를 갖고 왔습니다.

HGJ가 약간 쑥스러운 듯 자랑스러운 듯 “형님, 회 떠서 형수님이랑 잡숴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시장에 가면 이것 얼마짜리야? 5만 원? 지금 줄게”라고 합니다. 성격 급한 HGJ는 “이 인간 같지 않은 놈아! 선배고 나발이고 너하고는 끝이다!”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가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인간다운 사람이라면, “와~ 참돔 살이 많이 올랐네. 너, 낚시 실력이 좋구나. 추운데 고생했지? 잘 먹을게. 다음에 소주 한잔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요?

위 세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먼 옛날의 다른 곳 얘기를 잠깐 해봅시다. 나중에 이곳들을 다시 살펴야 하니까요.

이집트 왕국이 들어섰을 때 나일강 하구 삼각주에서 정착 생활을 하며 수렵·채집·어로를 주로 하며 살았던 사람들과 수메르 왕국에 정복당하기 직전까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구 충적토 지역에서 농경 생활을 하던 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물물교환을 했을까요?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시장을 만들었을까요? 특히 충적토 지역에서 농사를 주로 짓던 그들은 기본적으로 대가족을 이루어 살았고, 더군다나 가부장적인 사회였다고 하는데, 과연 그랬을까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지요.

어쨌거나 루소파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선함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다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인간다움’은 대체로 내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 마음을 주고받는 일종의 ‘명예’와도 같은 겁니다.

◐ 선물(膳物, gift)을 주고받는 것도 물물교환이라 해야 할까?

먼저, 선물(膳物)과 호혜성(互惠性), 교환(交換)의 사전적인 뜻을 짚어봅시다. 선물이란 남에게 인사나 정을 나타내는 뜻으로 물건을 주는 행위 또는 그렇게 준 물건을 말합니다. 호혜성이란 서로 은혜를 베풀어 혜택을 누리는 성질을 말하고, 교환이란 서로 주고받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물을 교환하는 것과 경제학에서 ‘어떤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그 값으로 같은 가치의 다른 물품이나 화폐를 얻는 것’의 의미로 쓰이는 ‘등가 교환’이 같을 수가 있을까요?

예컨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단어 하오(hao)는 물건의 영(靈)을 말하고, 어떤 귀중한 물건(타옹가)을 주고받는 것은 그 타옹가 속의 하오를 교환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제가 만일 이웃에게 선물을 받았다면 그 사람의 영혼의 일부까지 함께 받은 셈이 되지요. 물론 지금에야 그 사람의 호의 또는 마음을 받았다고 할테지만 말입니다.

1925년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증여론』이란 논문을 출판하면서 ‘선물(膳物) 경제’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선물을 주어야 할 의무, 받아야 할 의무, 되돌려 주어야 할 의무 등을 수행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를 유지시키고 결속시키는 강력한 힘이라고 강조하죠.

모스가 이 논문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상품 거래(물물교환)와 선물 거래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핵심적인 것은 호혜성을 갖느냐, 아니냐는 차이입니다. 모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호혜성을 갖는 선물 교환이 사회 전체와 개인의 일생에 걸쳐 원(circle) 형태를 이루면서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겁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선물의 끊임 없는 순환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킨 채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할 수 있다는 거죠.

만일 누군가가 “어쨌든 물건들이 오고 갔으니 물물교환 맞네”라고 주장한다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속담을 떠올려보라고 얘기할 밖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교환은 영어로 ‘exchange’이고, 이 단어의 어원은 ‘ex(바깥으로)+change(바꾸다)’라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서 바꾼다고? 뭔가 인정머리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보다 교환의 ‘교(交)’라는 글자가 ‘두 다리를 교차하며 춤추는 모습’에서 나왔고, 본래 의미가 ‘사귀다’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 뿐만 아니라, 교환이라는 행위의 배경과 이유까지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인정머리 없는 물물교환은 진짜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교환의 ‘교’자가 ‘사귈 교’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다음 얘기를 읽어보시지요. <다음 회에 계속>

고영주 / 거제경실련 정책위원장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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