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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억측은 살아남았고, 물물교환은 어렵다재미 삼아 읽는 경제 이야기 : 화폐 ②

화폐 ①’에서 소개했던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애덤 스미스의 견해를 빌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물건을 갖고 다니며 유익한 것과 교환하려는 본능적 성향이 있고, 그런 이유로 물물교환을 하는 시장을 만들어 교환을 하였으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아주 ‘중립적인’ 교환의 매개 수단인 물건 '화폐'를 발명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 진술은 거짓입니다.

◐ 왜 “상상해보라”고 했을까?

왜 주류경제학자들은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상상해보라” 또는 “상상할 수 있다” 따위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한 마디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실로 기록된 것이 없다’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잠깐 시간여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역사 교과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12,0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화해지자 신석기혁명과 함께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고, 청동기 시대와 함께 도시와 국가가 발명되었고 …’ 등으로 역사를 기술합니다. 시대 구분을 짓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인류의 문명사가 마치 ‘1학년 끝내고 2학년, 2학년 끝내고 3학년’ 식으로 진행되어 온 것인 양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단절이 생기고, 일종의 장막(veil)이 처져서 본모습을 못 보게 만들죠.

공간적 범위를 유라시아 대륙만으로 좁히고, 수메르 문명이 생겨나기 직전까지, 즉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에서 6,000년 전까지의 과거 어느 시점을 생각해 봅시다. 어떤 곳에서 수렵·채집의 시기를 마무리 짓고 힘들게 농사를 짓고 있는데, 태평한 수렵·채집인들이 그 곁을 지나면서 “쟤들은 왜 힘들게 농사를 짓고 있지? 이상해.”라고 쑥덕거리는 풍경 말입니다.

이 시기에도 유랑하며 수렵채집을 하는 무리, 정착 생활을 하며 수렵채집을 하는 무리, 정착 생활을 하며 수렵채집과 농경을 병행하는 무리, 정착 생활을 하며 주로 농경에 의존하던 무리, 일정한 범위 안에서 목축을 하던 무리 등등의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활동들이 다층적으로 존재했던 겁니다. 쉽게 말해, 뒤죽박죽(?) 섞여 있었던 거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최초의 도시와 국가가 발명되고 난 다음에 이런 모습이 크게 바뀌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겠지요. 바뀌었다면 하염없이 유랑하던 무리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을 테고, 도시와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 사는 무리가 추가된 정도일 겁니다.

그리고 문자가 발명되고 교역이 이루어지며, 정복 전쟁을 펼치던 시기에도 여전히 정착 생활을 하며 수렵채집과 농경을 병행하던 무리와 농경을 위주로 정착 생활을 하던 무리들이 있었다는 건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또 문자를 갖지 않은 채 세력권도 작은 초기 국가들이 대륙에 띄엄띄엄 존재했고, 국가라는 것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 비국가 민족(부족)의 수효가 더 많았을 겁니다.

만일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국경선이 없었고 국가의 개수도 몇 안 되던 시절 이후, 국가의 세력권 바깥 어디에선가는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시장을 만들고 그것이 불편해서 자발적으로 화폐를 만들어내는 곳이 발견되었어야 하고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자가 발명된 지 5,000년에서 6,000년 가까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끼리 흥정을 하다가 자발적으로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서의 화폐를 만들어내는 일’은 기록된 것이 없다는 거죠.

재차 강조하건대, 그 어떤 역사적 기록도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19세기 상품교환이론(물건 화폐론) 주창자들은 화폐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화폐의 기원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말했던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 화폐의 기원과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들은 경제학 교과서에 실린 내용에 대해 코웃음을 칩니다.

또 시간이 흘러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다음,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의 모험가(?)들이 금과 은을 찾아 세계를 누비고 다닐 때, 그 어느 곳에서도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화폐를 만드는’ 공동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류학자들이 선사시대의 삶이나 그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원시(?) 부족들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근거 없는 억측을 사실처럼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정설인 양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 물물교환은 진짜 어려울까?

물물교환은 진짜 어려운 것이 맞습니다. 앞서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작은 마을 얘기에서 “간단한 물물교환이라도 가능하기 위해선 ‘필요의 이중적 일치’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갑은 콩 한 자루를 갖고 있으면서 구두와 바꾸기를 원하는데, 구두를 갖고 있는 을은 삽 한 자루를 원한다면 교환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갑은 구두를 갖고 있으면서 콩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고, 을도 마찬가집니다.

물건을 바꾸고자 하는 두 사람의 필요 또는 욕망이 반드시 일치해야만 물물교환이 가능한 데, 이게 어렵다는 겁니다.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이를 ‘욕망의 이중적 일치의 어려움(difficulty of double coincidence of desire)’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째는 물건 간의 교환 비율을 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주류경제학자들은 등가 교환, 즉 가치가 서로 같은 물건과 물건 또는 물건과 화폐가 교환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서로 손해 보지 않는 거고,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죠.

이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 행동경제학 이론 중 소유 효과, 손실 회피 편향, 이케아 효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들에 대해서도 다음에 글을 쓰겠습니다만, 우선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소유 효과란 약간의 시간 동안 어떤 물건(실험에서는 머그컵 등)을 갖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물건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고, 손실 회피 편향이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집착하는 성향을 말하며, 이케아 효과란 자신이 노력을 기울여 만든 물건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믿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이론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노력하여 만든 것과 가지고 있던 것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여 그것을 잃기 싫어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타인이 만든 물건과 자신이 만든 물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요? 무턱대고 바꾸려 하다가는 싸움 나기 십상이겠지요.

여기에 더해, 물건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교환의 가짓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납니다. 물건의 종류가 두 가지면 교환의 경우의 수는 1이지만, 세 가지면 경우의 수는 3, 네 가지면 6, 다섯 가지면 10, 여섯 종류면 15로 불어나고, 물건이 열 종류이면 경우의 수는 45가 됩니다. 만일 물건의 종류가 100가지면 경우의 수는 무려 4,950이 됩니다

이러한 계산 방법을 수학에서는 ‘조합’이라 부릅니다. 고등학교 수학책에 나옵니다만, 이 많은 경우의 수 각각에 교환 비율을 정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여기까지만 보면, ‘화폐가 필요하겠군. 주류경제학자들 주장이 맞을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그저 이론적인 어려움을 말했을 뿐입니다.

세 번째 어려움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 집단의 크기(인구 규모), 내집단 구성원들 간의 관계, 내집단 구성원과 외집단 구성원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등에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다음 회에 실제로 벌어졌던 일과 묶어서 얘기하겠습니다.

◐ 물물교환은 진짜 없었나?

기준이 필요합니다. 첫째, ‘물물교환이라는 개념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가?’ 하는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둘째,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등가 교환’으로만 한정한다면, 어떤 시기에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숫자로 회계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세계를 방문해야 합니다. 숫자로 회계를 시작하기 전의 세계는 기록이 없으니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야 하고, 그 이후의 세계는 시장과 교환에 관련한 기록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뒤집힌 진실을 만나보시지요. <다음 주에 계속>

고영주 /거제경실련 정책위원장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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