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호

아빠가 스포츠 뉴스를 보고 계셨다. 그때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오신 엄마가, “나 드라마 좀 볼께요” 하더니 채널을 홱 바꾸셨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 보통 때 같으면 “잠깐만! 잠깐만!”하고 소리를 지르시는데, 오늘은 그냥 잠자코 계셨다. 아빠는 양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반쯤 누워서 물끄러미 TV를 쳐다보고 계셨다. 피곤해 보이셨다. 아빠가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계시니까 심심했다. 나는 아빠 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새로 산 향기나는 강아지 인형을 아빠 코에 들이댔다. “아빠 냄새 맡아봐! 좋은 냄새 나지?” 아빠가 겨우 “응”하고 대답하시면서 얼굴을 돌리셨다. 나는 “아빠, 이 강아지 되게 예쁘지? 냄새 좋지?”하고 계속 물어보았다. 아빠가 “아흐… 이놈의 새끼야! 아빠 배 터져~ 빨리 내려와!”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 때 문득 아빠의 흰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나는 아빠한테 흰머리를 뽑아도 되냐고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아빠는 흰 머리를 한 개 뽑는데 100원씩 주겠다고 하셨다. 그 대신 실수로 검은 머리를 뽑으면 벌금 200원을 내야한다고 그러셨다. 나는 드디어 쉽고 재미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번 겨울 방학 동안에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주로 아빠 구두 닦기, 방 청소, 설거지 같은 일이었는데 몇 번 하다가 포기했다. 그 일도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엄마 앞치마를 입고 퐁퐁 거품을 그릇에다 가득 만들 때가 특히 재미있었다. 엄마는 내가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놓으면 검사를 하신 다음에 칭찬과 함께 1000원을 주셨다. 그런데 설거지를 몇 번 하다보니까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내가 꼭 불쌍한 콩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집안 일 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다. 그런데 오늘 재미있고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새 아르바이트가 생긴 것이다. 아빠가 누우시고 나는 아빠 머리맡에 앉았다. 아빠 흰머리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빠 머리카락을 뒤져보니까 흰 머리카락이 몇 개 더 있었다. 검은 머리를 뽑을까봐 긴장이 돼서 침을 꼴딱 삼켰다. 나는 단 몇 분만에 흰머리 다섯 개를 아슬아슬하게 뽑아냈다. 내가 흰 머리카락을 뽑을 때마다 그것을 아빠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아빠는 흰머리가 그렇게 많냐고 놀라시더니 흰머리 뽑다가 대머리 되겠다고 하시며 이제 그만 뽑으라고 그러셨다. 아빠가 1000원을 주시면서 500원을 거슬러 달라고 하셨다. 내가 잔돈이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 나중에 또 뽑아달라고 하셨다. 나는 1000원을 가지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빠 흰머리를 뽑아주고 돈을 받는 것이 미안했다. 1000원을 가지고 다시 아빠한테 갔다. 그리고 아빠에게 돈을 내밀며 “아빠, 이제 더 이상 흰머리 없어. 돈 안 받아도 돼”라고 말했다. 아빠는 웃으면서 “네 덕분에 젊어졌으니까 그냥 가져” 그러셨다. 돈 버는 건 좋지만 아빠한테 더 이상 흰머리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홈페이지http://wonjae.pe.ly <방이초등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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