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호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다. 나는 멍청하게 작년 크리스마스 때까지도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있는 줄 알았다. 12월만 되면 엄마 아빠는, 산타할아버지가 착한 어린이들에게만 선물을 나누어 주신다고 하며 나를 협박했었다. 나는 울다가도, 떼쓰다가도 그 말만 들으면 할 수없이 착한 애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착한 일을 할 때는, 산타할아버지가 이 걸 모르시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는 꿈속에서 산타할아버지를 만난 적도 있었다. 내가 엉터리 영어로 받고 싶은 선물을 겨우겨우 설명하고 있는데,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산타할아버지를 태운 썰매가 출발하는 바람에 울면서 쫓아갔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머리맡에 양말을 놓고, 자는 척하면서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그 때 내가 자지 않고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 아빠는 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이제는 다 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깜박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깨어보니 사탕이나 작은 학용품들은 양말 속에 들어있고 큰 선물 상자는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나는 소공녀 세라가 된 기분이었다. 주위 사람들 모두 나를 부러워 했었다. 엄마한테 내가 받은 선물을 보여드리니까 엄마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인 것처럼 놀라고 신기해 하셨다. 아빠는 선물을 하나만 나누어 달라고 조르셨다. 나는 "그러니까 아빠도 나처럼 평소에 착한 일 좀 하란 말이야" 하고 큰 소리 치면서 우쭐댔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도 엄마 아빠와 마찬가지로 연극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정말 있는 줄 알았다. 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금년 크리스마스부터는 엄마 아빠의 거짓말이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나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엄마 아빠한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요구할 생각이다. 그래서 착한 일을 열심히 찾고 있다. 엄마 대신 수퍼마켓에 심부름도 다녀오고, 학교에서 준비물을 안 가져온 친구들에게 내 것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오늘은 교문 앞에 예쁜 천사 인형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나를 찾아주세요＇ 함에 갖다 놓았다. 나는 착한 일을 할 때마다 다이어리에 그것을 적어놓는다. 그리고 받고 싶은 선물도 생각 날 때마다 적어놓았다. 그 다이어리를 엄마 아빠께 보여드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서 담판을 벌일 계획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자꾸 지나간 크리스마스 기억이 떠오른다. 착한 일을 많이 한 날은 산타할아버지가 내게 어떤 선물을 주실까 생각했었고 떼쓰고 말썽부린 날은 선물을 못 받을까 봐 고민하느라고 잠이 오지 않았었는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나니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이 심심하고 재미가 뚝 줄었다. 이젠 산타할아버지 썰매를 쫓아다니는 꿈도 꾸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크리스마스 연극도 보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작년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착한 일을 할 때가 훨씬 행복했었다. 이 글을 나보다 더 어린 꼬마들이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홈페이지 http://wonjae.pe.ly <방이초등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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