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가 현대산업개발에 내린 행정처분 경감(입찰 참가자격 제한 5개월→1개월) 후폭풍이 만만찮다. 시민단체는 ‘촛불’을 들고 유월의 밤거리로 나섰다. ‘거제시 정의와 양심 회복을 촉구하는’ 뜻에서다. 권민호 시장에겐 거듭 사과(謝過)를 요구하면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을렀다. 계룡산 자락에 ‘마파람’ 대신 ‘된바람’이 몰아칠 조짐이다.

권 시장은 앞서 이번 현대산업개발 일과 관련해 황종명 시의회 의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유감(遺憾)의 뜻을 밝혔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유감’을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 일컫는다. ‘말맛’에서부터 사과(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와는 질적으로 달라 보인다.

권 시장은 주민이 직접 뽑은 ‘선출직 공직자’이자 당적(黨籍)을 가진 정당인이다. 정치인의 사과는 머리를 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잘못의 정도에 따라 ‘벼슬’에서 물러나는 건 흔한 일이고, 때로는 법률적 판단을 거쳐 수의(囚衣)를 입기도 하는 등 체면 구기는 ‘뒤치다꺼리’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사과를 좀체 하지 않고, 그걸 끌어내기도 어렵다.

권 시장이 밝힌 ‘유감’을 외교상 쓰는 영어 표현으로 갈라보면 세 번째 단계쯤 된다. 가장 밋밋한 게 예의주시한다는 ‘Not Indifferent’. 미안하다는 정도의 ‘Express Concern’이나 ‘Sorry’가 그 다음이다. 사과나 사죄할 것까지는 없는 유감으로 ‘Regret’가 3단계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는 ‘Apology’를 쓴다고 알려진다.

권 시장은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때로는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한다”고 넋두리했다. 최근 들어 300만 원대 서민 아파트 추진이나 현대산업개발 행정처분 경감 등 굵직한 사안마다 시비가 붙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재선 길목에서 불거진 잇단 논란에 신경이 과민할 수도 있다.

권 시장은 “가장 두려운 건 오로지 거제시민의 민의다. 민의가 있어 스스로를 다잡고 힘을 내어 본다”고 했다. 여기서 그가 꼽은 민의는 아마도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연거푸 쓴소리를 쏟아내는 시민단체 등도 민의이기는 마찬가지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면 이런 민의가 오히려 믿었던 행정에 ‘둔기로 얻어맞은 듯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경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동열 기자  coda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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