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거제시를 상대로 낸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취소’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마냥 기다리기엔 꽤 불안했던지 ‘원래 행정처분(입찰참가제한 5개월)을 다시 심의해 줄여 달라’는 취지로 뒤늦게 민원을 넣었기에 하는 얘기다.

살림살이 팍팍한 거제시엔 ‘짭짤한 미끼’를 던졌다. 현대산업개발은 행정처분 재심의 신청서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거제시를 지원할 구체적 계획도 가지고 있으므로 정상참작 사유로 고려해 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사실상 ‘행정 스폰서(Sponsor·후원자)’ 역할을 에둘러친 셈이다.

현대산업개발은 한술 더 떠 “재심의 과정에서 거제시와 세부적 지원계획에 관해 협의를 통해 결정지은 후 재심의 때 그 내용이 참작되도록 할 예정”이라며 이른바 ‘돌직구’를 날렸다. ‘세부적 지원계획’이 뭔지 지금은 알길 없지만, 여러 대형 사업 추진으로 ‘쪼들리는’ 거제시 처지에 도움이 되는 ‘조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걸로도 애가 탔는지 뜬금없어 보이는 사과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22일 대표이사 이름으로 사과문을 내 ‘진심’을 강조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앞서 16일 열린 ‘거제시 민원 재심의 자문회의’에서 나온 의견(대시민 사과 등)에 따른 ‘겉치레’가 아니길 바란다. 여기서도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과 지원’을 약속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소송을 제기한 원고(原告·현대산업개발) 처지에선 거의 ‘굴욕’에 가까워 보인다. 법원도 아닌 피고(被告·거제시)에게 하소연하는 모양새라니 체면을 단단히 구긴 격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왜 이렇게 낮은 자세를 취하는 건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대목이다.

이제 ‘칼자루’는 거제시 계약심의위원회로 넘어갔다. 시청 담당 공무원 말로는 오는 24일쯤 계약심의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란다. 현대산업개발이 그토록 바라는 대로 행정처분을 ‘1개월 또는 45일 사이 기간’으로 낮춰주는 것도 계약심의위 몫이고, 애초 결정을 재확인하는 것 역시 계약심의위 고유 권한이다.

그런 까닭에 각계의 의견수렴 차원에서 미리 이뤄진 ‘민원 재심의 자문회의’ 의견이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행정과 기업 사이에 주고받는 ‘짬짜미(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로 비쳐서도 안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이동열 기자  coda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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