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난 건 지난해 봄날이었다. 만났다기보다는 본 것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음악 강좌에 처음 등록하던 날, 그녀는 수강생 속에서 빛을 발하며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튀었다. 나이를 탐색하기 힘든 몸매와 뽀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고급스런 안경 너머로 세상을 얕잡아 보고 있는 듯했다. 차갑고 도도하게까지 느껴지는 첫인상 때문에 그 누구도 그녀의 곁으로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다. 더러는 말수가 있다가도 평범한 일상사에 대해서는 일체 끼어들지 않았다.

그녀와 소통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 역시도 몇 달을 넘기고서야 겨우 그녀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여간하여서는 빈 구석을 내보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있었다. 저만치 나타나도 찬 기운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그 찬 기운이 싫어서 추운 겨울날 문을 닫아버리듯 나는 그녀를 향한 문을 닫기에 바빴다. 유독 추위를 타는 나는 등마저 돌리고 앉아 그녀를 피했다.

처음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 왔을 때도 느껴지는 당황함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나름은 친절하게 접근해 왔으나, 나는 으레 그렇듯 그녀에게서 한기만을 감지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에게 나의 조바심을 들키고서야 눈을 마주쳤다.
“왜 그리 놀래요?”
“아, 네. 아니에요.”
그녀는 내 속을 들여다보는 듯이 압도하며 다가왔다.
“돌체(dolce) 뜻이 뭐예요?”

이렇게 하여 그녀와의 통로가 열리게 되었지만, 내겐 언제나 그녀는 추위 그 자체였다. 저만치 눈에 보여도 옷깃을 여미며 단속하게 되었다. 처음 말을 튼 뒤로 그녀는 자주 접근해 왔지만,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재등록을 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감지했고, 또 그것을 알고 있음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던 그녀와 내가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속의 허물을 털어 놓게 된 사건이 생겼다. 하루는 굳이 바쁘다며 피하는 나를 식탁 앞에 옴짝달싹도 못하게 묶어 놓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식사나 한 끼 하자며 제의한 그녀는 예약을 하고 가는 게 좋겠다며 전에 받은 적 있는 식당의 명함을 찾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녀의 지갑에서는 사진 한 장이 떨어졌다. 증명사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주워들며 보니, 그녀와는 너무도 달랐다.
“누구세요?”
“어머니.”
순간 나의 의식 속에서는 칼을 대도 한참 댔구나 하는 생각이 피켓을 들고 일어섰다. 그래, 당신이란 여자는 그럴 만해. 하지만 차마 이 말은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아버지 쪽을 많이 닮았나 봐요?”
나는 그녀의 얼굴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다 알겠다는 뜻을 둘러서 표현하는 데에 그쳤다. 그동안 너무도 도도하게 보였던 그 얼굴이 모두 허식임을 꼬집고 싶었다.
그녀는 내가 집어준 사진을 먼지나 묻지 않았을까 입으로 호호 불어대고, 손으로 몇 번이나 닦으면서 소중하게 지갑 속에 챙겨 넣었다.
“시어머니야.”
“네에?”

친정어머니가 아니고 시어머니 사진이라니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궁금증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다. 너무나 닮지 않아 성형수술을 한 얼굴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시어머니란 말에 그녀를 가둔 내 관념의 방을 조금씩 열어야 했다. 결국 그녀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며 식탁 앞에 앉았다. 그녀의 지나온 세월이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나 되듯 화롯가에 앉아 있는 손녀의 꼴이 되어 하나도 흘리지 않고 듣는 처지가 되었다.

정치인 집안의 외동아들과 결혼했다. 시어른과 시할머니까지 함께 모시고 사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문으로 시집가서 겪어야만 했던 시집살이. 그녀는 철저히 그 가문의 새로운 것을 받아 들였고, 시할머니 시어머니 병 수발까지 도맡으며 자신의 인내를 담금질하였다. 간병으로 가슴에 응어리졌던 감정들도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미안했다’는 시어머니의 한 마디로 풀리더라. 그 말끝에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그녀. 그리하여 눈물 흘리며 마지막 가시는 시어머니를 손수 단장(殮襲)하여 보내드렸다는 그녀의 서러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먹먹함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아무리 아쉽다 하더라도 시어머니의 주검을 염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도 아쉬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지갑속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랜다는 그녀. 시어머니 살아 계실 때에 자신을 꾸밀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화려하게 살아야 저승에 계신 분이 마음이라도 편할 게 아니냐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하게 보였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의해 사람이나 사물을 평가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몇 초 안에 성격이나 품성을 읽어낸다. 관상학적으로 해박한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각자 살아온 경험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사람들은 마음의 벽을 수 없이 가지고 살아간다. 편견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착하게 보인다든지, 무섭게 보인다든지 각자의 틀에 넣어서 짐작하고 평가한다. 화려한 얼굴의 여성이라면 더욱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얼굴이 강해 보인다든지, 끼가 있어 보인다든지 우리가 촘촘히 짜놓은 의식의 망에 하나씩 대입시키면서 데이터를 뽑아낸다. 견고하고 높은 성문을 열어젖히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바라본 그녀를 만났다. 이 순간 편견의 성에 갇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을 헤아려 본다.

약력
*수필가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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