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화

자작자작 물기를 머금은 어머님의 음성이 수화기 속에서 새어나온다.
"아범은 출근했나, 애들은 아픈데 읎제, 밥은 묵었나?"
늘 입버릇 같은 안부를 물으신다. 어머님 목소리 사이로 음질이 신통치 않은 낡은 카세트의 노랫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이 소리 한번 들어봐라, 누군 줄 알것나?"
학창시절 영어듣기평가를 치르듯 귀로 온 신경을 모은다. 쿡쿡, 저절로 웃음이 난다. 남편의 노랫소리다. 짐짓 시치미를 떼며 모른다고 답했다.
"아범 아이가" 어머님은 답답하다는 듯, 힘주어 말씀하신다. 그러고는 네가 우리 집 식구가 되기 전 온 가족들이 노래방에서 갔을 때 녹음한 테이프라고 일러주신다. 되짚어보면 그 시절엔 노래방을 나서는 손님 손에 주인은 녹음한 테이프를 쥐어 주었었다.

"근데 갑자기 그 테이프를 왜 들으세요?"
의아해하며 여쭈었다. 수화기 너머 어머님의 목소리가 소슬한 바람소리를 내며 전해져 온다.
"아범 다음에 미영이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바람은 순간 회오리치며 귓속이 아리도록 날아든다.
어머님은 아들 둘에 딸 둘을 두셨다. 그러나 지금은 딸이 하나뿐이다. 교통사고로 둘째딸을 잃은 지 15년의 시간이 지났다. 시누이의 노래를 타고 어머님의 한숨이 숨어서 운다.

너도나도 산으로 바다로 치닫는 여름휴가다. 시누이네, 시동생 식구, 그리고 우리가족까지, 대가족이 어머님을 모시고 바다로 향했다. 도로를 가득 채운 차들이 구불구불 벌레처럼 줄지어 고개를 넘어간다. 갈 길은 멀지만 마음은 이미 바다에 몸을 담구고 물장구를 친다.
제법 괜찮은 펜션이다. 열세 명의 식구가 머물러도 충분할 만큼 널찍하다.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를 품은 바람이 간간하게 살갗에 와 닿는다. 어머님도 흡족하신 눈치다. 모셔오길 잘했다.

하나둘씩 빈 술병이 늘어간다. 취기가 오르고 웃음소리가 펜션 가득 떠다닌다. 펜션 안에 노래반주기가 있어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났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배경음악이 된다. 어머님께 노래 선곡 책을 내밀며 한곡하시라 청했다. 얼굴 가득 홍조를 띈 어머님이 노래를 하신다. 귀에 익은 노래를 하신다. 먼저 떠난 딸이 불렀던 그 노래를.

―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걱정 멀리 던져 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꿈으로 살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
〈살다보면-권진원〉

어머님의 노랫소리가 울린다. 아니, 운다. 전화기를 통해 들은 노랫소리의 음질이 나빴던 이유는 아무래도 낡은 카세트 탓이 아니라 늘어져버린 테이프에 있지 싶다.

별빛이 하나하나 찾아오는 길을 따라 밤바다를 거닐었다. '따그작 따그작' 발에 밟힌 자갈들이 소리를 낸다. 바다를 마주하고 앉았다. 파도를 따라 돌멩이들이 구른다. '다그르르 따그르르' 모래해변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이 소리가 좋아서 몽돌해변을 찾았다. 한참을 숨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밀려오고 쓸려나가는 파도는 소리를 낸다. 갖가지 모양의 돌멩이 위를 구르는 바닷물은 돌멩이들과 부딪치며 파도 소리를 낸다. 그렇게 파도는 돌멩이와 부딪는 아픔을 담아 아름다운 소리를 만든다.

때때로 고통은 삶을 아름답게 한다, 삶 속에 수없이 부딪치는 돌멩이 때문에, 사람 속에 수없이 구르는 돌멩이 때문에 내지르는 우리들의 비명은 삶의 곡조를 만들고 명곡을 남긴다.
나는 그날 밤 불후의 명곡을 두 곡이나 들었다.

약력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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