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을 타고 라일락꽃 향이 집안으로 스민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오늘처럼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향도 있다. 그것은 향이라 부르기엔 과분하여 나는 냄새라 부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를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한 남자가 아이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순식간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영문을 묻는 사람들에게 남자는 도둑놈이라며 쥐어박는다.
곧이어 소식을 들은 아이의 엄마가 씩씩대며 달려오더니, 우리 아이가 도둑질하는 걸 봤냐고 따지며 대든다. 남자는 냄새가 증거라며 아이의 손을 잡고 흔들어 보인다. 그 여자는 아이의 손을 코에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오래 전부터 슈퍼에서 물건이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남자는 이리저리 살피다 빈 박스를 쌓아두는 쪽 철조망에 큰 구멍이 나 있는 걸 발견했다. 사람의 눈에 잘 띠지 않는 허술한 곳을 찾아 구멍을 내고 도둑은 드나들고 있었나 보다.

남자가 지킨다는 소문이 퍼지자 더 이상 도둑은 들지 않았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을 때쯤 아이가 남자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아이는 발뺌을 해 보지만 손에서 나는 오징어 냄새는 명백한 증거가 돼 변명의 여지가 없게 했다.

그동안 잃어버린 물건들이 아이의 소행이라며 남자는 목청을 높인다. 억울하다는 아이의 말에 경찰서로 가서 사실을 밝히자고 남자는 으름장까지 놓는다. 서슬이 퍼런 남자의 행동에 대세가 기울었음을 판단한 여자가 요구 조건을 묻자,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남자는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여자는 밀고 당기는 타협도 못해 본 채 고스란히 변상을 하고 돌아선다.

그 여자를 보며 씁쓸한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늦은 시간 깔끔한 외모에 향이 좋은 스킨 냄새를 풍기며 공장 안으로 낮선 남자가 들어왔다. 유독 깔끔함과 풍기는 향이 좋았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오늘 중으로 납품이 가능하냐며 남편에게 묻는다. 납품시간을 못 맞춰 발을 구르는 일들은 종종 우리의 거래처가 되기도 하여 남편은 흔쾌히 승낙했다.

기계를 최대속도에 놓고 저녁도 거른 채 빠르게 한 덕에 제품은 납품시간 전에 완성이 되었고. 남자는 완성된 제품을 보고 흡족해 하며 계속 거래할 뜻을 비친다. 나는 거래처가 하나 늘었다는 생각에 고생한 보람을 느끼며, 남편을 도와 제품들을 차에 실고는 납품 잘 하시란 인사까지 덧붙였다. 남편은 차가 출발하기 전 그 남자에게 대금 결제를 물었고, 그는 납품부터 하고 입금시킨다며 명함을 내밀었다.

다음날 입금 확인을 하자 입금내역이 없다는 멘트가 나온다. 나는 그 남자와 통화를 했다. 삼십분 후에 입금 확인하란다.
그러나 또다시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멘트는 ‘입금내역이 없습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엔 전화도 받지 않고 ‘음성 메시지로 자동연결 됩니다.’란 멘트만 흘러나온다. 여러 번의 통화를 시도해 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같은 업종의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말하자, 그들도 개업하고 한번씩은 겪어본 일들이라며 우리가 속았다는 말을 한다. 연륜이 쌓인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데, 경험이 부족한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한 꼴이 됐다. 사람을 보면 한눈에 척하니 알아봐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핸드폰에 문자도 남기고 사무실로 찾아도 가 보지만 연락이 안 된다. 허탈하고 분한 마음에 욕을 해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한편 생각해 보면 기분 좋은 스킨 냄새가 신뢰감을 주어 마음 읽기를 놓친 탓이기도 하다.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게 그 사람에겐 군침 도는 허점으로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둑은 드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허점부터 문단속 했어야 했다.

아무리 좋은 냄새라도 나에게 나뿐 기억을 준다면 그 냄새가 싫어진다. 그날 남자에게서 나던 스킨 냄새는 향일까 냄새일까.

<약력 >
*수필가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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