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용태

새벽 다섯 시다. 알람이 시끄럽게 나를 깨운다. 그 동안 여섯시에 맞추어 놓았던 알람을 큰 맘 먹고 다섯 시로 바꾸어 놓았다. 내 자신을 단련하고 길들이는 주체는 바로 나라는 것을 다짐하면서. 나이를 더해가면서 자꾸만 뒤처지고 게을러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럴 때마다 자신에 대해 불만이 커지고, 이러다간 나의 미래도 불안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새해 아침에 내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다.

매년 겨울철이면 몸이 웅크려 든다. 출생시기가 동짓달이라서 태어나면서부터 혹독한 추위를 격은 탓이리라. 겨울철에서부터 이른 봄까지는 바깥에서 운동하는 게 싫기만 하다.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여 체력을 다져야 함에도 추위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새벽운동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렇다고 긴긴 겨울동안 무기력하게 지내자니, 환자 아닌 환자가 된 것 같다.

‘이래서는 안돼, 혼자서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엉뚱하게도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자신을 이기는 자가 제일 강자다.’였다. ‘그래, 지금부터 명상이라도 하자.’ 정신력이라도 키워서 인생의 후반을 대비하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일체 유심조(一切 唯心造)라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있지 않던가.

조용히 일어나 창을 마주보고 앉았다. 가부좌를 하고 등줄기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세 번했다. 몽롱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남아 있던 잠 뿌리가 달아남을 느낀다. 찬 기운에 지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창을 밝힌 채, 천지는 고요 속에 침잠해 있다. 무슨 구도자가 된 느낌으로 조용히 눈을 감는다.

명상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 제일 먼저 귀를 괴롭히는 잠들지 않는 소리가 있었다. 벽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 옆에서 곤히 잠든 사람의 숨소리, 거실 한 구석에 장승처럼 서 있는 냉장고 팬 돌아가는 소리였다. 이런 소리들이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였지만 고요 속에서는 소음이 됨을 처음으로 알았다. 성불을 위해 구도자가 된 스님들이 깊은 산속의 사찰을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명상은 그야말로 무상무념(無想無念)이 기본이라 했다. 고요한 새벽에 정좌로 눈 감고 앉으면 명상은 절로 되는 줄 알았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이 이리도 많을까. 먼저 가신 아버지 얼굴, 서울에서 혼자 공부하며 지내는 작은 아들 생각, 직장에서의 업무, 어린시절 친구들 생각까지…….

그야말로 오가는 상념들을 정리하면 작은 책 한 권은 될 것 같다. 이래서야 어찌 명상을 한단 말인가. 더욱 자세를 바로하고 내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조심스레 호흡하는 연습부터 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잡념은 물리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귀 안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약한 이명(耳鳴)이 느껴진다. 이게 또 병이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명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걱정 하나를 더 얻고 말았다.

겨울밤은 길기도 하다. 창밖에는 새벽 직전의 어둠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우유 배달을 위해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소리가 적막을 깨트린다. 창밖이 점점 밝아오면서 겨울 까마귀와 까치 울음소리가 새벽을 연다. 우리 아파트는 산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청아한 산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추운 겨울 동안에는 산새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까마귀와 까치 싸우는 소리만이 요란스러우니 겨울 새벽은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부좌를 풀고 조용히 눈을 뜬다. 다리가 저려 한동안 그대로 앉은 채로 풀리기를 기다려야했다. 그래도 오늘 마음먹은 일을 처음으로 실천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제발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짐 또 다짐하면서 아침을 맞는다.

필자약력

거제시 주민생활지원과장

거제대 평생교육원 수필장착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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