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희

반란인가.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무작정 버스를 탄다. 침묵하는 어촌 풍경이 스친다. 겨울 논바닥이 죽은 듯 엎드려 가슴을 훑고 지난다.
얼마나 왔을까. 빌딩 숲이다. 도심이라 여겨지는 곳에서 후다닥 내린다. 어둠이 깔리는 도로를 정처 없이 휘돈다.

긴장한 거리가 팽팽하게 맞선다. 밤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 군상들이 출현하기 직전의 정적 같다.
영화관이 눈에 들어온다. 작정 없던 표를 산다. 도시를 찾아 나섰건만 영화 속조차도 산골이다.
하지만 싫지 않다.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소박한 정서가 내 열기를 식혀준다. 구수한 유머가 잔잔한 웃음도 선사한다.

어린 소녀가 장애를 극복하며 사랑을 쟁취하는 스토리다.
주인공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과 당찬 행동 양식을 압권이라 해야 하나. 영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적극적인 자세와 순수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권태롭고 무기력해지던 마음에 다소 생기를 찾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산책은 가벼운 흥분과 동행한다.
상념의 숲을 거닐며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풍금소리마저 나를 따라 나선다.
저녁이 여물었다. 불빛 쏟아져 내리는 밤거리는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총총댄다.

질주하는 오토바이, 자동차 행렬이 눈부시다. 삶의 무게를 떨쳐내고 싶음인가. 밤의 유혹 속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술렁댄다.
정류소 앞에 다다랐다. 주변이 상가처럼 번잡하고 대낮을 방불케 한다. 거리의 난전이 대 성황이다.
운동복을 걸어놓고 몽땅 떨이를 왜치는 아저씨 앞에 구경꾼이 몰렸다.

차속의 오색 과일이 선택받으려고 화사하게 눈웃음친다. 백화점 부도상품 신발이라며 행인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는 아주머니의 절박함이 눈물겹다.
기웃대는 관중도 없는 할아버지는 조악한 조화를 들고 목청껏 손님을 불러댄다. 카바이트 빛 속으로 불나방 되어 뛰어든 사람들이 소주 한 잔으로 가슴을 데우고 있다.

갓 잡아 왔다는 오징어 활어회가 취객들의 신명을 돋운다. 밤거리는 활기로 넘쳐난다. 삶의 치열함은 겨울 추위도 밤의 정적도 외면한 채 몰두한다. 내 속의 반란이 서서히 평정을 찾아간다.
포장마차에 정신이 팔린다. 노란 삼각뿔 모자와 빨간 앞치마를 두른 나이 지긋한 아저씨 차림이 유난스럽다. 울긋불긋한 얼굴 화장은 영락없는 삐에르다. 완벽한 분장에 행인들이 폭소를 뿜어댄다.

호떡하나를 굽는데도 혼신의 힘을 다 쏟는다. 흥미롭다. 적당하게 떼어낸 밀가루 반죽을 동글동글 굴리며 가운데 소를 넣고 기름 친 철판에 척 내려친다.

설탕과 으깬 땅콩으로 버무린 소가 구미를 당긴다. 도장을 찍듯 판으로 누르고 뒤집어 다시 익힌다. 날렵하게 구워 포개 얹고 만들기를 계속한다. 이렇게 보통사람들이 즐기는 호떡이 재빠르게 구워진다.
퇴근하는 직장인이 자전거를 탄 채로 호떡을 받는다. 따뜻함을 찬바람에 빼앗기지 않으려 봉지를 옷 속에 품는다. 가족들을 위한 애틋함이 진하게 베어난다.

지폐 한 장으로 호떡봉지를 나도 얻는다. 그 아저씨처럼 가슴에 가만히 묻어본다. 따뜻함이 온 마음으로 번진다. 뭉클 눈물이 솟구친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바빠진다.


△ 필자 주요약력
쪾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쪾한국문인협회 회원
쪾수필집 ‘바람이어라’

새거제신문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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