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혜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나비를 보면 나비 노래를 불렀고, 새를 보면 새에 관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삼촌이 불러주는 휘파람소리를 많이 좋아했다. 삼촌이 휘파람불면 따라 하겠다고 하루 종일 입을 모아 휙휙 거리며 다녔다. 소리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저녁이면 입과 볼이 아파 징징댄 기억이 난다. 삼촌은 그런 조카인 나를 참 예뻐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배운 노래 좀 해보라며 앞에 세워 놓고 박자를 맞춰줬다. 나는 두 손을 모으며 노래도 부르고, 신이나 춤을 추기도 했다. 제 흥에 겨워 엉터리로 불러도 항상 잘한다고 칭찬이다. 걷다가 힘이 든다며 엄살을 부리면, 얼굴 한번 찡그린 적이 없이 나를 등에 업었다. 재워 달라 투정을 부리면 등에 업고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하고, ‘반쪽이’ 이야기를 해 준다. 그 반쪽이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 내 아이들에게까지 들려준 적이 있다.

삼촌은 일을 다 마친 저녁엔 연필로 적은 가사를 등잔불에 비춰보며 노래를 불렀다. 라디오도 없고 전기도 없던 그 시절. 누구를 통해서 들어 적었는지는 모르겠다. 삼촌이 노래를 부르면 누워서 귀동냥으로 듣고는 따라 불렀다. 노랫말은 한 두어 번 들으면 곧잘 따라 했다. 동네 어른들이 놀러와 창가 좀 해보라고 시킨다. 그러면 천연덕스럽게 어른들의 노래를 불러댔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뜻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불러댔다.

흥얼거리는 습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 밭에서 풀을 맬 때나 차를 운전할 때도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흥얼댄다. 한번은 남편이 화난 일이 있었다. 남편은 마음이 상해 있는데,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날 보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난 기분이 나쁘면 노래를 부른다고 되레 큰소리를 친다. 난 그랬다. 마음이 울적하면 동요에서부터 가곡, 대중가요, 성가 등 가리지 않고 불러댄다. 그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오늘도 나는 노래를 부른다. 들어줄 이나 같이 불러줄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혼자 흥에 겨워 부르기도 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슬픈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템포가 빠른 노래보다 차분히 가라앉은 노래를 즐겨 부른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가면 정작 불러야 할 노래가 없다. 신이 나는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어야 하는데, 청승맞게 슬픈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깰까 망설이기 일쑤다.

삼촌이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훨씬 지났다. 그러나 난 어려울 때나 시골집이 생각나면 늘 삼촌을 떠올린다. 나보다 열네 살 위인 삼촌은 우리 집의 가장이었다. 장남인 아버지와 둘째 삼촌은 셋째인 삼촌에게 가문의 짐을 다 떠넘기고 전사하셨다. 늙은 외할머니와 어린 조카를 돌보아야 했던 삼촌. 논뙈기 하나 없이 다랑이 밭 몇이 고작이었지만, 식량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어려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철부지였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엄마를 따라 도회지로 나왔다가 다섯 해가 지나 다시 시골로 되돌아갔을 땐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삼촌은 결혼을 하여 나에겐 숙모와 사촌동생이 생겼다. 새로운 식구와의 낯익힘보다 삼촌과의 거리감이 생소하여 주위를 맴돌았다. 삼촌에겐 여유가 없어 보였다. 구성지던 노랫가락은 없어지고 코고는 소리만이 고달프게 들렸다. 언제나 잰걸음으로 바삐 걸어 다녔다. 등이 휠 정도로 나뭇짐에 짓눌렸으며, 어깨가 부서질 정도로 거름통이 매달려 있었다. 내가 성장하여 다시 바라보는 삼촌은 늘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삼촌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일찍이 부모를 여위고 위로 두 형을 잃고 가장이 된 삼촌. 어려움 속에 살면서도 늘 오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노래처럼 하던 삼촌. 부모 없이 사는 고통을 누구보다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살기를 갈망했던 삼촌은 마흔 다섯이 되던 봄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힘겨운 삶의 끈을 내려놓았다. 아무런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말없이 생을 마감했다.

내가 결혼하여 오 년째 되던 봄날이었다. 삼촌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자그마치 올망졸망 육 남매를 낳아 놓고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났다. 차디찬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숙모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채 누워 있었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너 왔니?’ 하고 손을 잡아줄 것 같은데 그냥 누워 있었다. 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쿵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 모든 것을 막아버렸다. 조카가 왔다고 숙모가 이야기를 해도 눈을 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삼촌이 미웠다. 느닷없이 무심했던 내 자신의 자책감이 엄습해 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하고 죄스러워 울고 또 울었다.

내 마음 밑바탕에는 삼촌이 내게 준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아픈 말보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삶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렇게 삼촌은 내게 고운 심성을 심어 주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과 부딪히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내 아픔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다 삼촌을 통해 얻어졌을 것이다. 여유가 생기면 시계와 라디오를 사 드리겠다는 나 혼자만의 약속도 지킬 수 없도록 빨리 떠나셨다. 그 동안 받은 사랑의 빚을 갚을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난 것은 삼촌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베풀기만 한 삼촌. 그 삼촌의 노래가 오늘 갑자기 듣고 싶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 삼촌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보다 훨씬 젊은 얼굴과 모습으로. 십일 층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본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들이 내 흐린 시야 속에서 수수밭으로 일렁인다. 수수 사이로 거름통 지게를 지고 젊은 남자가 걸어가며 휘파람을 분다. 그의 머리 위엔 고추잠자리 떼가 비행한다. 그 뒤를 꼬마아가씨가 따라가며 흥얼거린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걷지만 넘어지지 않고 걸어간다. 세상 속으로.

약력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경남가톨릭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견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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