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순 련
/오비초등학교 교사

수능 시험 2개월을 남겨둔 어느 날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대신하여 아들을 데리고 있었던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아들이 마지막 친 모의고사에서 평균 성적이 20점이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부모님을 대신하여 담임선생님의 호출에 학교를 다녀온 여동생은 마치 자기가 3년간 조카 뒷바라지를 소홀히 하여 점수가 하락된 것인 양 어쩌면 좋으냐고 전화통을 놓지 못했다.
여동생의 전화를 받은 나는 떨어진 20점보다 떨어진 점수를 보고 마음의 부담을 느꼈을 아들의 정신적 충격에 잠이 오지 않았다. 솔직히 내일 모래가 본고사인데 일이점도 아니고 20점이나 하락한 점수를 보고 어느 부모가 속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경우에 누구보다도 놀랐을 사람은 바로 아들 자신이 아니었을까? 아들이 받았을 충격과 그 충격이 가져올 후속 결과에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고3어머니가 되면 엄마도 고3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직장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여동생에게 아들을 맡겨놓고 고3아들의 뒷바라지를 한 적이 없었다. 따끈한 저녁을 지어준 적도 없었고, 새벽이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렸다 물 한 잔도 건네주지 못한 엄마였음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점수에 맞는 대학교를 찾아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로 안심은 시켰지만 대답조차 시원스레 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놓는 아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나는 이런 아들에게 활기를 넣어줄 묘안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 한 통의 편지를 썼다.

먼저 내가 누구의 엄마라는 것과, 그 아들이 지금 수능 점수의 하락으로 힘들고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과, 그러나 엄마를 떠나 있으니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을 낱낱이 적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이 여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씩씩하게 용기를 갖고 마지막까지 갈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교장선생님께서 하루 틈을 내시어 이 아이를 교장실로 불러 등 한 번 두드려주며 부모 떠나 멀리 와 있으나 용기 잃지 말라는 말과 20점이나 되는많은 점수가 떨어졌지만 너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부탁드리는 편지였다. 그리고 이 편지를 보냄을 아들에게 절대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우리거제도의 멸치 한 포를 보냈다.
그리고 난 뒤 이번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만 해도 고마우니 걱정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 마당에 곱게 물든 낙엽도 함께 동봉한 편지를 보냈다. 2개월 후 아들은 밝은 마음으로 본고사를 치르게 되었고,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아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가게 되었다.

다음해 2월 아들이 졸업을 하던 날, 처음으로 아들의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는 교장실로 찾아가 교장선생님께 깍듯이 인사를 드렸다. 2개월 전 편지를 보낸 엄마임을 밝히고 바쁘신 교장 선생님께 그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교장선생님은 오히려 내 등을 두드려주시면서 그 짭쪼롬한 멸치 속에 어머니의 걱정스런 마음이 들어있더라고 전하며 먼 곳에 아들 보내고 걱정 많았다는 위로를 해 주었다.
내가 교장실에서 나오자 아들이 깜짝 놀라며 어머니가 왜 교장실에서 나오냐고 묻길래, 시골 녀석 3년 동안 잘 지켜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온다고 했다.
그 때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우리 교장선생님 정말 근사하신 분이세요. 300명이 넘는 수험생들의 성적을 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제가 수능 시험 2달 남겨놓고 점수가 많이 떨어진 적 있었잖아요. 그때, 교장실에서 저를 찾는 방송을 했어요. 교장실로 들어서니 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시고, 점수가 떨어진 것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틀림없이 좋은 성적이 나올 거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교장실을 나오는 데 왠지 모르게 제 겨드랑이에서 희망의 날개가 나오는 것 같은 용기가 생겨나지 뭐예요?』
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씩 웃었다.

지금도 나는 아들에게 그 때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드렸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밤늦게 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엔 지칠 대로 지친 고3학생들이 비 맞은 병아리처럼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느 학생의 얼굴에도 희망과 밝음의 미소를 볼 수 없었고 어디론가 절망의 늪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 같은 얼굴로 졸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책가방이 떨어져 내용물이 다 쏟아져있어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고, 시내버스의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한 밤중에 누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내몰고 있는 것일까?

수능시험 며칠 전이다. 가장 답답하고 걱정되는 사람은 부모나 교사보다 당사자일 것이다.
행여 성급한 어머니가 원하는 대학에 먼저 달려가서 자녀들을 향하여 어서 이리 오라고, 여기가 너의 목표지점이라고 손짓하고 있지 않나 걱정이 된다. 차분하고도 조심스런 맘으로 고3 자녀들이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부모가 되는 길을 모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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