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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사직을 보존하옵소서’거제의 재발견 - 거제 사직단(社稷壇)과 여제단(厲祭壇)

최근 거제역사문화연구소 김의부 소장과 함께 거제사직단과 여제단(厲祭壇)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거제면 일대를 탐방했다.

사극을 보면 신하들이 임금 앞에 엎드려 “전하 종묘와 사직을 생각하옵소서” 또는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소서!”라며 읍소하는 장면을 유독 많이 보게 된다.

도대체 종묘와 사직이 무엇이기에 조선시대 관료들은 걸핏하면 임금에게 이토록 종묘와 사직을 강조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종묘와 사직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조선은 나라를 세우면서 ‘유교’를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유교의 예법에 따르면 국가의 도읍지에는 반드시 세 곳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세 곳이란 왕이 머무는 궁궐과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 그리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말한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사직단의 위치는 ‘오른쪽에 사직, 왼쪽에 종묘’라 돼 있다. 조선은 주례에 따라 법궁을 중심으로 사직은 오른쪽에, 종묘는 왼쪽에 뒀다.

특히 종묘는 수도 한 곳에만 설치하는 데 반해 사직은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단위인 주현(州縣)마다 설치했다. 주현의 중앙의 사직과 같이 사직도 관아의 서쪽에 세웠다.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檀)으로 나눠 따로 설치했는데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위치했으며 각 단에는 동은 청색, 서는 백색, 남은 적색, 북은 흑색, 중앙은 황색 등 다섯 가지 색깔의 흙을 덮었다.

또 사단에는 국사신(國社神)을 북향해 모시고 후토신(后土神)을 동향해 배향했으며 직단에는 국직신(國稷神)을 북향해 모시고 후직신(后稷神)을 동향해 배향했다. 각 단에는 사방으로 계단을 설치하고 단 둘레에는 유(壝)라고 하는 울타리를 치고 그 유에도 사방으로 문을 설치했다고 한다.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조선 왕조의 유교적 전통인 왕실의 제례 문화를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사직은 나라에서 백성의 복을 빌기 위해 토지신 사(社)와 곡식신 직(稷)을 모신 단으로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편안한 삶,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나라에 큰 사건이나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도 사직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해마다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국가의 의무였고 ‘종묘사직’은 곧 국가를 상징하는 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08년 일제 통감부는 사직단 철폐했고 해방 이후에는 쓰임새가 없어지면서 점점 방치되는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사직단은 서울, 대구 경산, 창녕, 산청, 남원, 보은 등 6곳으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경남 지역의 경우 지난 2010년까지 산청군의 단성 사직단(경남기념물 255호)이 거의 유일한 사직단이었다. 그러나 이후 창녕 사직단(경남기념물 278호), 진주 사직단(경남기념물 291호), 고성 사직단(경남기념물 296호)이 발굴했고, 위치가 밝혀진 사직단도 거제를 비롯해 밀양·창원·곤양 등이 있다.

위치를 발견했지만 복원이 불가능해진 사직단도 있다. 사천 사직단의 경우엔 위치를 발견했지만 토지 재개발로 흔적이 없어졌고, 합천 사직단은 지방공단이 들어서면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 함양과 산청 사직단은 지번 주소는 나왔지만 정확한 위치와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며 나머지 지역의 경우엔 지번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타 지역에 비해 그 위치가 잘 알려진 곳 중 하나인 거제사직단은 거제면 서정리 890번지 일원으로 거제면 굿뉴스요양병원 뒤 편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거제사직단은 1872년 지방도 거제부지도(巨濟府地圖)와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제부도(巨濟府圖∙동아대박물관 소장)에서 비교적 그 위치가 상세히 기록돼 있는 데다 지역민의 증언도 오랫동안 전해져 온 곳이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거제사직단이 현의 서쪽에 있다고 기록돼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읍지, 거제부읍지, 영남읍지 에는 현∙부∙군의 서쪽 5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72년 지방도와 거제부도에 나타난 거제사직단은 기성관을 기준으로 남서쪽 산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천과 지형으로 잔존 유적 등으로 볼 때 굿뉴스요양병원 뒤 편 동산이 확실해 보인다.

거제사직단은 지난 2018년 경상문화재연구원이 지표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지표조사를 맡은 경상문화재연구원은 보고에서 거제사직단으로 추정되는 곳에 제단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축시설 2곳을 확인했으며 지표조사를 통해 찾은 거제사직단 추정 건물터의 규모와 구조 등을 밝히기 위해선 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거제지역과 관련된 각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사직단 외에도 거제지역에는 여제단(厲祭壇)의 위치까지 소개하고 있다. 조선시대 지리지에 따르면 거제여제단은 현의 북쪽, 부의 북쪽 4리, 군의 북쪽 5리에 위치했다고 한다.

또 1872년 지방도와 거제부도에 나타난 거제여제단은 위치는 거제사직단과 거제향교의 북쪽, 녹동(鹿洞)아래 개울 넘어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돼 있어 어느 정도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녹동은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 여단을 설치했는데, 이는 현 재 온 나라에 도는 코로나-19 등 전염병이 나돌 때 이를 예방하고 물리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여단 또는 여제단은 전염병 외에도 흉년이 들어 굶어 죽거나 병이 들어 객사한 뒤 상주도 없이 외로이 구천을 헤매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로하거나 역질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를 물리치기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엔 동쪽의 성황단과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다.

여제단은 1908년 이후 일제에 의해 파괴된 대표적인 민간신앙의 하나로 의약이 발달하기 전 조선 사회의 질병에 대한 관념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거제사직단과 여제단 모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우리 고유의 문화인만큼 복원 또는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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