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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을수록 골로 간다윤지영 /칼럼니스트

치통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차고 시고 뜨거운 음식이 닿기만 해도 오만상이 된다. 씹고 뜯고 맛보는 게 인생의 낙이라면 건치의 유전자를 못 가진 나에게 대단한 유감이다. 시커먼 동굴 속에 물 묻힌 솜을 넣고 밤을 새운 젊은 날, 입 안에서 벌어지는 혹독한 테러는 청춘기 고민보다 가혹했다. 결혼 후에 줄곧 이어진 그것은 산통 못지않은 아픔이었다. 인내가 미덕인 줄 알고 대책 없이 참은 벌로 좌우 양쪽 어금니를 보철물(금)로 씌워야 했다. 지금 욱신거리는 부분이 예전에 치료했던 그 부분이다.

치과로 달려갔다. 연휴 끝난 대기실은 만원이었다. 두어 시간 넘도록 기다려야 할 판이다. 먼저 온 환자들이 TV를 보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발 신종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가 늘고, 허위 인턴 활동 증명서 작성 피의자가 검찰 호출을 쿠테타라 호통치고, 인재라고 영입한 청년 정치 초년생이 성폭행범이고, 영화 같은 팩트 뉴스가 도배를 하고 있다. 우선멈춤 했던 치통이 활동을 재기했다.

희한하게도 치통은 불쾌감이 급상승할 때 강한 펀치로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치통시작이 작년 10월쯤이다. 편법과 부당함으로 부와 권력을 얻고 그것을 대물림하려는 자를 온갖 괴변으로 쉴드치는 인간에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홍길동류 의원들, 그걸 보고 듣던 내 부실한 잇몸이 증상으로 죽는다는 소리를 질렀다. 염증이 덧나 붓고 욱신거리고 피가 났다.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갈수록 심해졌다.

긴 기다림 끝에 내 이름이 불리어졌다. X레이를 찍고 진료실 침대에 누워 또 20분을 더 기다렸다. 의사는 진즉에 치료를 하지 않아 일이 커졌다고 일침을 놓았다. 몸에 통증이 있다는 것은 어디가 아프다는 신호이므로 통증이 느껴지면 얼른 병원으로 가 원인규명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대로 두면 충치가 치수(치아뿌리)까지 확산된다는 말씀. 초기단계에는 치료방법과 치료비가 간단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발치하고, 임플란트나 의치를 해야 한다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와 같다.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외부 언론을 중심으로 관련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쪽 보건당국은 10일 후에야 ‘사람 간 전염’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사스 연구 최고권위자라는 왕광파(王廣發)이 “우한 폐렴은 통제되고 있다”고 큰소리 친 사이 역병은 국경을 초월하여 날아다녔다.

한국의 실상도 꼭 이와 흡사하다. 꽤 오래 전부터 곳곳에서 충지, 치주질환, 부정교합 같은 사회적 염증이 돌출되기 시작했다. 소득양극화, 교육입시, 일자리 부족, 청년실업, 노인빈곤, 민초들이 통증을 호소하고 누가 슬쩍 건드리기라도 하면 비명을 질렀다. 이제 전염병까지 도져 사회경제적 기대는 희망 제로 상태다. 웃는 사람보다 화내는 사람이 늘면서 홧병 내원 환자가 늘었다는 기사도 있다. 화병은 분노가 쌓여서 생긴 병이다.

여유있는 쪽은 권력층뿐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듯 인자한 표정으로 ‘우리 경제는 나아지고 있다’고 타이네놀을 준다. 인사돌이 아닌 진통제는 약발 떨어지면 더 아픈 느낌이다. 그러나 서민은 ‘국민이 먼저’라는 약속을 믿고 마냥 기다린다. 그 사이 반환점을 돌았고, 이제와 보니 ‘먼저’라는 말의 우선순위는 조국(祖國)이 아니라 조국(曺國)이었고, ‘빚진 게 많다’는 의미의 채권자도 국민이 아닌 조국이었다. 오판한 쪽은 국민이라 국민은 그 잘못한 벌을 톡톡히 받는 중이다.

제 발등을 찍은 우리는 자책하며 반성하는데,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은 측근들은 살판이 났다. 불평등을 평등이라 우기고, 불공정을 공정이라 우기고 정의롭지 못함을 정의롭다고 우긴다. 국민이면 누구나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거늘, HB측 인사들만 법 위에서 법을 조롱하는 신(神)과 같다. 우기면 이긴다는 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형국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 보편의 횡포는 생활정서로 굳어져 나아가 미풍양속으로 자리잡을 추세다.

며칠 후 예약 일에 나는 구강질환을 대폭 치료할 참이다. 뒷북치는 격이지만 더 미룰 수 없다. 물론 뼈를 깎는 아픔이 뒤따를 것이다. 마취를 하고 이를 갈고 깎고, 날카로운 기계음에 온몸이 새파랗게 질릴 것이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추억과 후회와 질환만 남는다더니, 진료실 베드에서 입을 아 벌린 나는 진즉에 치료하지 못한 걸-통증, 시간, 치료비-후회하게 되리라. 그러나 이쯤에서 치료하게 된 게 다행이라 여긴다. 더 늦어 골로 가고 싶지 않으니까.

'골로 가다' 말은 6.25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좌우 군인들의 학살이 산골짜기에서 행해졌기에 골(골짜기)로 (끌려)간다는 뜻은 곧 죽음을 뜻한다. 해방 이후의 이념적 갈등과 분쟁 속에서 골로 간 님들의 핏빛 설움, 그 영혼들이 오만과 자기당착의 끝판을 보여주는 진영먹기 인사들 꿈에 나타나 ‘더 늦으면 골로가니 어여 진실을 말하라’고 채근해 주면 좋겠다. 양심자는 억울하게 골로 가고, 위선자는 언제나 당당하고.

곧 4월이 온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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