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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서한숙 /거제스토리텔링협회 대표

요즘들어 울 어머니는 노래 부르기를 부쩍 즐긴다. 예전과 달리 곡목도 다양하다. 치매를 앓아서인지 최근 일보다는 70-80년 전의 일을 더 잘 기억한다. 평소 부르지 않았던 일본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율동까지도 곁들인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아이처럼 손짓발짓이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빠른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친 나에게 “쉿, 저기 왜놈순사 온다”하며 숨으라는 시늉까지 한다.

그렇다. 어머니가 용케 기억해 낸 '그 시절'은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였다. 주권을 상실한 국민에게는 '왜놈순사'의 존재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조센징'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멸시당하기 십상이었다. 이런저런 상황 속에 '왜놈순사'가 온다는 소리만 들려도 숨었을 것이다. 당시 '조센징'은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말과 글을 지운 자리마다 일본말과 글로 촘촘히 새겨야 했다. 정녕 망국의 설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올해는 광복 74주년이다. '해방(1945)'이라는 미명아래 우리말과 글을 되찾은 지 오래다. 그렇게 한민족의 얼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 문화와 역사도 되찾았다.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보다 더한 자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어머니는 지난한 그 시절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산다. 치매증상을 앓다 엊그제는 뜬금없이 일본군가풍의 노래를 부르며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노래는 어머니가 어릴 때 학교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다는, 바로 그 노래였다. 리드미컬한 곡조로서 역동성이 절로 느껴졌다. 애국가인 양 술술 잘 터져야만 집에 갈 수가 있어 밤낮없이 외웠던 일본말이었다.

무의식의 발로일까. 어머니는 눈앞의 현실은 까맣게 잊은 채 그리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잃어버린 그 세월을 보상받고 싶어서인지 친구들과 손을 꼬옥 잡고 불렀던 낯선 나라의 그 노래를 다시 부른다. 구순이 지난 오늘까지도 낱낱이 기억하는 것은 삶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울 어머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어디 그것만 있으랴. 내가 살고 있는 거제지역만 해도 그렇다. 빼앗긴 나라의 설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양새다. 거제대교(1971), 신거제대교(1999), 거가대교(2010)가 개통돼 외딴 섬의 이미지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하지만 거제도의 부속섬 중 하나인 지심도는 엄연히 '거제시 일운면'에 딸린 섬인데도 거제시가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돌이키건대 일제강점기(1936) 때 지심도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일본의 해군기지로 사용했다. 해방 이후에도 연합군의 군사기지로 사용된 데다 군사시설(진해해군통제부)로 묶여 소유권을 논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거제시는 지지난해 비로소 지심도 소유권을 되찾았다. 이는 81년만의 반환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심도는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럼에도 소유권을 제자리로 돌려놓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던 모양새다. 그런 의미에서 지심도의 역사는 반환의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논할 수가 있다. 그래야만 원시림으로 우거진 동백나무숲의 진실도 알 수가 있다.

잃어버린 것이 지심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목면 유호리에 있는 '저도'의 소유권도 빼앗긴 지 오래다. 저도 또한 일제강점기(1920년대)때에는 일본군의 전략기지(통신소, 탄약고)로 사용되었으며, 6·25전쟁 때는 연합군 전략기지(탄약고)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났을 땐 해군에서 인수해 관리했다. 이에 원주민들이 섬에서 쫓겨나야 했으며, 어로 행위도 전면 통제됐다. 거제와는 무관한 국방부 소유의 섬이었던 탓이다.

더군다나 전쟁이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1954년 여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휴양지로 사용했다. 1972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전용 별장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이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대대통령들의 여름 휴가지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언론매체를 통해 잠시잠시 보여주는 저도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곳이었다. 자연 그대로를 담은 풍경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금단의 섬이었던 만큼 거제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원주민들의 삶과는 무관한 섬이었음은 물론이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저도를 찾아 공약을 실현하고 있다. 저도의 개방과 반환을 공식화한 것이다.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거제도의 73개 부속섬 중의 하나임을 인정하고 반환의 절차를 밟기까지 무려 47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 속에 장목면 유호리와 저도를 연결한‘거가대교’가 개통돼 사통팔달 거제도로 뻗어나고 있다. 잠깐잠깐 보이는 저도를 나는 대통령의 신분이 아니어서 그저 낯선 풍경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는 거제시민으로서의 설움이자 저도의 지난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세대들에게는 이런 치욕의 역사를 다시는 대물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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