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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면 수정봉의 비밀조선의 마지막 산성 ‘옥산금성(玉山金城)’, 발굴 유물로 새롭게 조명된 ‘수정봉’
옥산성은 옥산금성, 수정봉산성, 수정산성 등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조선의 마지막 산성 ‘옥산금성(玉山金城)

거제면 동산리 수정봉 정상에는 길이 778.5m 최고높이 4.7m 폭 3m로 만들어진 옥산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0호)이 있다.

옥산금성, 수정봉산성, 수정산성 등으로도 불리는 옥산성은 지름 48m ~ 80m의 장방형 자연석을 산의 지세와 8부 능선을 따라 테를 두르듯 막돌을 쌓아 표주박 형태로 만들었으며 가까운 계룡산 자락에서 돌을 구해 쌓았다고 한다.

성이 만들어졌을 당시 성 안에는 누각과 무기고, 연못 등이 있었고,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남쪽과 서쪽의 성문만 확인된다.

옥산금성 서문

특히 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동쪽과 서쪽 성문은 ‘ㄱ’자형으로 만들고 돌층계를 마련해 성안으로 출입구를 만든 특이한 형태인데 이는 옥산성이 구조상 봉우리에 띠를 두르듯 만들어진 퇴뫼식산성이라 옹성을 대신할 효율적인 방어 구조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옥산성은 고종10년(1837년) 당시 거제부사 송희승이 거제 백성을 동원해 쌓은 성으로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산성이다.

1899년 편찬된 경상도여지집성 거제군읍지 성지조엔 옥산금성에 대한 기록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수정산성은 군의 동북쪽 5리에 있으며 부사 송희승이 계유년(1873년) 축성했고 성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고 기록됐다.

복원된 옥산성 집수지

성 중앙 바위 봉우리 위엔 망루가 하나 있다. 사방 2m 거리에 기둥을 세워 만든 이 망루는 4개의 기단만 남아있던 것을 지난 1997년 복원공사와 1998년 11월 망루 단청공사를 한 뒤 ‘금성루’라는 이름 붙였다.

성 안 동쪽에 자연 암석을 기단으로 서 있는 비석엔 성을 축조하게 된 과정이 기록한 축성비가 있는데, 옥산금성축성기(玉山金城築城記)에 따르면 1873년 3월 6일 처음 축성을 결정한 후 3월 15일 축성 준비를 거쳐 5월에 공사가 시작됐고, 1873년 10월 15일에 성(城)이 완성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옥산성 서문 아래에 위치한 '옥산금성' 석각

성을 쌓은 송희승은 짧은 기간 거제도 전 지역에서 축성비용을 거둬 5개월 보름 만에 성을 쌓으면서 거제지역 백성들의 희생 강요했던 것이다.

때문에 조선 조정은 송희승을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죄로 파직시키고 장 100대를 때리고 경상도 풍기군에 유배 보낸다.

옥산성 동문

발굴 유물로 새롭게 조명된 ‘수정봉’

그동안 옥산성은 ‘조선의 마지막 산성’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2016년 6월 거제시가 성 내 집수지 조사하면서 옥산성의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집수지의 형태와 유물로 미뤄 성내 집수지는 7~8세기 중반 처음 만들어진 졌고, 이후 최소 2번 이상 수축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출토된 유물을 감안하면 둔덕기성 집수지 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집수지 발굴 현장

또 처음 수축된 시기는 고려시대 및 임진왜란 즈음이며 마지막 수축은 1873년 거제 부사 송희승이 옥산금성을 축성했던 시기로 추정됐다.

집수지는 2016년 시굴조사에 이어 2017년 정밀조사가 이뤄졌는데 2016년 시굴조사에서 옥 토기, 기와, 자기, 옹기, 목기 등 통일신라시대(7세기 후반)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출토됐다.

집수지에서 발견된 기와조각(명문)

또 2017년 이뤄진 정밀조사에선 특이한 유형의 ‘인면망와(또는 잡상)’를 비롯해 자기류, 옹기편과 다양한 종류의 기와, 전(塼), 홍두깨, 동전(건륭통보, 상평통보) 등이 발견됐다.

청나라 시기에 주조된 건륭통보와 상평통보가 발견된 것은 집수지가 조선 후기 보축 또는 내부 준설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집수지 조사결과 옥산금성의 내부 시설이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제시는 최근 성 내부에 있는 9곳의 건물지 중 1곳을 발굴조사를 했다.

최근 발굴조사된 축성비 옆 건물지

조사 결과 이 건물은 기단과 계단을 갖춘 길이 1750cm, 너비 560cm 규모 지어졌으며 지난 2017년 집수지에서처럼 통일신라 시기 기와가 다량으로 발견됐다.

발굴과정에서 잇따라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발견 되면서 성내 건축물뿐만 아니라 옥산금성이 처음 만들어진 게 조선시대가 아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성일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시는 정확한 초축 시기를 알려면 성 전체에 대한 시굴조사를 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2020년 도 지정문화재 보수정비사업 예산을 신청해 내년쯤이면 옥산성의 비밀이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집수지에서 발견된 잡상

그동안 옥산성 인근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유적은 명진리 유적, 동산 유물 산포지, 동상리 삼국시대 분묘, 남산패총, 동산리 남은골 유물산포지, 괴목정 고분군 등 다수 발견 됐지만, 명진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밝혀진 유적은 없었다.

옥산금성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통일신라로 밝혀지면 이 유적은 통일신라시대 거제의 속현 중 하나였던 명진현과 관련된 유적일 가능성이 크다. 또 옥산성은 조선시대 마지막 쌓은 성이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처음 만들어진 이후 수차례 수축한 성이 된다.

집수지에서 발견된 기와조각
집수지에서 발견된 건륭통보와 상평통보
집수지에서 발견된 '귀면와'
집수지에서 발견된 자기조각
집수지에서 발견된 '적새(암마루장 기와)
집수지에서 발견된 토기 및 자기조각
집수지에서 나온 각종 그릇의 손잡이(파수부) 부분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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