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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김정희 /거제문화예술재단 경영지원부장

4월 2일 저녁 7시 30분 거제시문화예술재단 대극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기획공연이 펼쳐졌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수립 100주년과 4.3 거제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평화대음악회’의 막을 올린 것이다.

첫 순서로 심포니교향악단의 ‘아리랑 판타지’와 어린이 독창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 이은 김순영 소프라노가 부르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잔잔한 선율로 객석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객석은 젊은 나이에 항거하다 영원히 별이 된 시인의 아픔이 녹아들며 숙연해 진다.

노래의 의미에 녹아들던 나 또한 어릴 적 추억이 파노라마로 떠오른다. 윤동주!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첫사랑 시인이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중학교 때였다. 방학이면 집에 내려오던 대학생 오빠는 그 해 겨울 방학 때 문학서적 몇 권을 나에게 주면서 읽으라고 하였다. 그 중 하얀 표지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금박의 글자체가 선명한 시집이 내 눈에 들어왔다.

첫 장을 넘기니 민족시인 윤동주를 소개하는 흑백 화보 속에 유독 내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으니 준수한 외모의 윤동주. 일본 대학 졸업사진이 흑백으로 실려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이 있다니. . . 그날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요즈음 인기 있는 연예인에 열광하는 십대들이 있다면, 그 시절에는 김소월, 유치환, 윤동주의 시에 빠져들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암송하면서 시인의 알수 없는 아픔을 내 아픔으로 하여 때론 밤을 꼬박 새기도 하였다. 온통 ‘상처’와 ‘아픔’으로 가슴 저며지던 시인의 시어 하나하나는 내 10대의 영혼이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내 첫사랑의 생가를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10년 전 청마기념사업회에서 청마의 북만주 예술혼 답사를 위한 해외 문학 답사 길에 용정시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인의 생가는 너무 초라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평소엔 특별하게 찾는 이 없는 임의 생가는 봄부터 가을까지 한국 관광객들만 드문드문 찾아 올 뿐이라며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생가 옆 고즈넉한 모습의 우물이었다.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에 나타난 우물이 정말 생가 옆에 있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다”는 그 우물 속을 나는 하염없이 응시하였다. 그런데 그 추억의 사나이 자화상은 온데간데 없고 그 속에는 온갖 쓰레기만 가득하여 세월의 허망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1917년 그토록 애타게 염원하고 기다렸던 조국 광복을 반 년 남겨 놓고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한 많은 숨을 거둔 짧지만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일제 식민지하의 가난과 슬픔을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극복한 윤동주. 일제 치하의 굴욕의 시대 조국 읽은 슬픔을 문학으로 달래며 문학으로 항거한 윤동주. 시대적 절망과 고뇌보다 자아 성찰과 현실 극복의지를 주제로 반영한 대표적인 시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몸으로 살고 간 그의 파란만장 한 삶이 100년이 지난 오늘 성악이라는 무대예술로,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정신으로 후손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적시고 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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