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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그를 거제의 藝術人이라 하네’인터뷰 = 거제예총 역사의 산증인, 김운항 전 거제예총 회장

1982년 7월 10일, 장승포 평화식당에서 한국문인협회 거제지부의 창립을 준비 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같은 자리를 지킨 사람이 있다.

대구에서 거제까지 매달 있는 월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버스 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던 20대 열혈 문학청년은 어느새 거제 예술계에 큰 어른이 됐다.

최근엔 거제 예술인 최고의 영예인 제25회 거제예술상의 주인공이 된 김운항 前 (사)한국예술인총연합회(이하 거제예총) 거제지회장(이하 시인)의 이야기다.37년 전 그날 장승포 평화식당에서 시작된 모임은 그해 12월 10일 한국문인협회 거제지부의 창립총회로 이어졌고, 이 단체는 거제예총의 뿌리가 된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시인은 IMF로 중단된 거제선상문화예술축제를 다시 일으키는 추진위원장으로, 또 청마100주년 기념사업(2009년) 추진위원장으로 활동 하면서 두 권의 시집(가실바꾸미의 초상, 그리움 그리고 사랑)을 연달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동랑·청마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역임 중엔 청마선생의 북만주 삶을 재조명하고, 청마묘소와 청령정 일대에 시비를 세우는 일에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예총회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16년부터 1년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시를 발표하면서 엮어낸 시집 ‘섬이 詩라 하네’는 지역 문단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인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왜 조금 더 치열한 삶을 잇지 못했을까’라며 후회하는 일이 많단다.

365일이 아닌 730일, 또 1095일 시작(詩作)을 이어가지 못했던 것도 후회요, 예총회장 재임 시절이며 지난 세월 곳곳에서 ‘좀 더 치열한 삶이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아 있었던 탓이라고 했다.

더구나 거제예총의 시작부터 함께한 거제예총의 산증인으로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다. 각 지부의 규모가 크지 않았던 시절엔 회원들의 단합은 물론 각 지부의 교류가 활발했던 반면, 현재는 각 지부마다 배정된 문화행사를 치르는데 급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또 매년 전공자들의 졸업과 함께 매년 새로운 회원이 가입되고 있는 안정된 예술단체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예술단체의 고충이나 시스템의 한계 문제도 적잖게 걱정된다고 했다.

임기가 끝나면 지역 문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었던 시인의 역할은 ‘지켜보는 것’과 ‘바로잡는 것’이다.

이는 비단 지역의 문단뿐 아니라 ‘거제 예술계’에 보내는 시인의 애정어린 눈빛이기도 하다. 잘하는 것은 칭찬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겠지만, 지역 예술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잘못된 관습이나 폐단에 대해선 강력하게 지적하고 바로잡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이다.

또 시인은 간혹 거제가 ‘문화예술의 불모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현재 거제예술의 진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나 현재나 지역 특성상 거제의 예술은 인근 통영과 비교돼 왔다. 하지만 시인의 관점에선 통영 예술은 한국전쟁 시기 전후 통영으로 피난 온 예술인들이 머물면서 남긴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통영은 이후 전국적이거나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가가 없었던 반면, 거제의 예술인들은 나날이 발전하며 전국 또는 세계적의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37년 동안 거제 예술인들이 차곡차곡 쌓아 온 지역 예술의 결과물이며, 앞으로 거제의 예술인들이 더 치열하게 예술과 창작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라고 했다.

시인은 “예술가가 자신에게 더 냉정하고 치열해야 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삶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작품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지역 예술의 발전을 묵묵히 응원하는 것은 물론, 자신부터 치열한 예술인이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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