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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솔릭과 상처 아물기원순련 /‘생각하는 사람들’ 대표

태풍 솔릭이 다녀갔다. 우리 거제시엔 우리가 걱정한 만큼의 커다란 피해를 주지 않고 얌전히 휘돌다 소멸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태풍 ‘솔릭’이 지나간 3일 후 라면 박스 3개가 택배로 도착했다. 포장을 풀어보니 사과, 배, 가을자두 이렇게 세 종류의 과일들이 라면 박스 안에 질서 없이 담겨있어 보낸 사람의 어지러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왔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사시는 옛 교직 동료였던 김선생님께서 보낸 과일이었다. 그런데 그 과일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무화과를 쪼개어 보니 빠알갛게 물들어 있어야 하는 꽃술은 누렇게 변해 있었고 사과도 배도 상처를 입은 것이 태풍으로 인한 낙과임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김선생님께서 학교를 퇴임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순천교대를 졸업하고 거제로 부임한 선생님은 거제를 고향처럼 여기며 이곳에다 둥지를 틀고 거제도 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평생을 보냈다. 그러다 12년 전 평교사로 명예퇴임을 한 후 고향인 순천시 낙안면으로 갔다. 거제시를 떠나간 후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아들 내외와 함께 선생님의 퇴직금으로 과일 농장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시골이 고향이라 원래 농사짓는 것은 보고 살아서 과일농사가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였다. 그러던 선생님께서도 농사일의 특수성과 어려움을 전화로 가끔씩 하소연 해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선생님의 과일농사가 순탄치 않겠다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3년 전 아이들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그 과실나무에서 열매가 열렸다며 기쁨의 소식을 전해와 선생님 가족의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왔다. 그리고 지난해엔 지인들에게 선생님네 과일을 제법 판매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 솔릭에 귀하게 지킨 과일이 모두 상처를 입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싶어 전화를 해 보았다. 선생님께서 하도 어이가 없어 눈물도 안 나온다며 울먹이면서 말문을 열었다. 올처럼 가뭄이 심한 해가 어디 있었던가? 이 가뭄 속에서 과실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가족 모두가 지하수와 사투를 벌여 살려놓은 과일들이 겨우 제 정신을 차리고 단맛을 더해가야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태풍이 낙과로 돌아온 것에 대한 서운함에 하늘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었단다. 한참이나 원망스런 이야기를 하더니 순천시의 재해 복구 긴급 인력지원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순천시 186 농가의 낙과 과일을 긴급 일손 돕기 지원으로 낙과를 수거하여 상품과 비상품으로 순식간에 나누고 일손 돕기 지원자들로부터 낙과 판매가 그의 다 이루어졌다고 했다. 일손 돕기 지원자들의 가족, 이웃, 근무지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여 낙과가 판매되고 솔릭 덕분에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도 정리가 되어 그렇게 큰 손해가 아니어서 재해복구 지원자들의 고마움에 살맛이 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보낸 과일은 상처가 나긴 했지만 과일 맛만을 대단하여 지인들에게 보낸다고 했다.

전화를 마치고 과실을 찬찬히 살펴보니 과일 껍데기에 태풍 솔릭의 흔적이 여기 저기에 숨어있었다, 과육이 떨어져 나간 상처 난 사과를 바지에 쓱쓱 문댄 후 입 안 가득 베어물어보았다. 상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사과의 단맛이 입 속 가득 번져갔다. 입가에 단맛이 전해지고 선생님 가족의 웃음도 단맛 속에서 느껴졌다.

선생님의 상처 난 과일을 먹으면서 우리 집 마당에 가득 심겨있는 해바라기를 바라보았다. 지난 가을 시골 어느 집에서 잘 익은 해바라기 한 송이를 얻어와 남편이 집 주변에 100그루가 넘게 심었다. 김선생님네처럼 남편도 저녁마다 수돗물로 그들을 살리기 위해 한 여름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가뭄을 이긴 그 해바라기가 슬쩍 스쳐간 태풍 솔릭에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바람을 이기지 못해 고개가 잘려나간 부분도 있었고, 허리가 휘어져 버린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해바라기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솔릭이 지나간 며칠 후 휘어져버린 해바라기가 바로 서지는 못했지만 기력을 차렸다. 누어버린 줄기가 생기를 찾았고 꺾어져 버린 해바라기의 큰 얼굴도 꺾어진 채로 생글생글 웃으며 노란 꽃잎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스스로 자정력을 갖추고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가을 햇살을 받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지 않고 일생을 사는 것들이 어디 있을까? 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하는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어느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흔들리며 젖으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흔들리면서 다시 고개를 곧게 세우고, 젖으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상처에 묻혀 인생을 파국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있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이렇게 하여 마지막에 우뚝 서는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사람에겐 어떤 일이든지 이겨낼 수 있는 자정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에서 상처 자신만 보고 먼저 무너져 버린다. 자신에게 신이 내린 자정 능력이 있음을 찾아보려고도 않는다. 그런데 김선생님네 아들 내외가 부러진 과일나무를 베고 대체 과일을 준비하고, 오히려 부모님을 겪려 했다고 한다. 우리 집 해바라기가 쓰러진 자세로 꽃술을 만들고, 꺾어진 고개를 하고도 열심히 열매를 익혀가고 있는 것처럼 김선생님네 가족도, 태풍 솔릭에 받은 상처를 하루 빨리 치유할 수 있는 치유의 가을이 되길 바란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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