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대선당선자의 취임사 키워드는 ‘혁신' ’평등‘ '소통'이었다. 특히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는 대목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가슴에 장미향기로 와 닿았다.

1년이 지난 4월 중순, 대통령의 ‘약조’가 회자되었다. 과거의 비위가 불거진 한 선출직 공직자(김기식)가 자기합리화에 급급하며 버티기로 일관하자 범야권의 사퇴 압박이 강도를 높였다. 그 때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다. “국회의원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위법 여부를 떠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국민들의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데 다음 말을 보자.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판단에 따라야 하겠지만 위법한지, 관행이었는지에 대해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혁신과 국민통념상 안 맞는 인사일 경우 즉각 사퇴를 받겠다’ 정도라면 정치에 과문한 나 같은 일반시민도 이해가 쉬울 텐데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판단에 따라야 하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붙인 다음, ‘위법한지 관행인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이다.

‘관행’이란 ‘사회에서 예전부터 해 오던 대로 함’이라고 사전에 적혀있다. 주로 폐기처분해야 할 관습에 해당하는 부정적 용어다. 취임사의 ‘잘못된 관행 결별’이란 뜻은 분명 이를 의미했을 텐데, 그렇다면 대통령의 이 말은 자기모순이 된다. 비슷한(부적절한 행위) 입장에 놓인 대상을 향해 질타를 하던 김기식의 전력이 언행불일치 입증자료가 된 마당에, 해석에 여지를 둔 임명권자의 발언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정치인의 거짓말’이란 속어가 있다. 사실을 조작의 틀 속에 넣고 왜곡․변형시켜 싸우는 그쪽 사람들을 겨냥한 용어다. 여기 중심인물들 화법의 공통점은, 난처한 입장 표명 시 장문(長文)을 쓴다는 거다. 논점을 흐리려는 꼼수를 만연체에 넣고 버무린다. 마치 찹쌀가루에 술․효모 등, 팽창제를 섞어 만든 꽈배기와 흡사하다. 변명과 군더더기 따위를 반죽하고 가늘고 길게 늘여 두 가닥으로 꼬아 설탕까지 묻혀 만든 권력 언어, 진실이 은폐된 말은 ‘화자한테 뭔가 깊은 뜻이 있나?’ 하고 청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어쨌든 비위 당사자인 공직자를 물러나게 한 건 박수칠 일이다. 국민은 ‘잘못된 관행’을 바꾸겠다는 취임사의 초심이 말로써 끝나는 관행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오늘 나는 뜻밖의 상황에서 ‘관행’ 소리를 또 들었다. 온라인 웹서핑 중 물건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그 시각부터 이것이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pc활동 중 화면 우측에 광고성 멘트와 사진으로 나타나 구매 충동을 부채질 했다. 고객이 한 번 찜한 물건은 놓치지 않겠다는 그 상술에 결국 나는 넘어갔고, 입금완료 했다. 그런데 20여일이 지나도 물건은 안 오고 안내 문자도 없었다. ARS 연결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업체 홈피에 글을 남긴 며칠 후 소통이 이루어졌다. 배송이 늦은 이유란 것이 ‘외국수입품이라 많이 기다려야 하는 건 관행이다’는 것. ‘배송이 지연될 경우 주문자에게 즉시 알려야한다. 정해진 배송기간이 초과 지연 될 경우 그에 따른 배상금을 지불해야한다’고 명시된 이용약관은 형식에 불과했다.

이런 경우에 고객이 원하는 것은 실수를 정중하게 인정하는 업체의 성의있는 태도이다. ‘죄송합니다, 즉시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하면 될 것을 관행이니 뭐니 길게 변명을 늘어놓을 일인가. 그 말도 안 되는 핑계는 마치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정가의 당선자들과 흡사했다.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니며 후보들은 자신을 광고한다. ‘여러분들의 머슴이 되겠으니 부디 뽑아만 주신다면...’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막상 권력을 쥐게 되면 태도가 돌변하고 말꼬기를 하게 되는, 이 또한 관행이다.

정치인의 언어는 가독성이 높아야 한다.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짧고 분명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가수 조영남도 대작(代作)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당시 이상한 관행논법을 들고 나와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국부(國父)의 ‘편들기식 언어’나 홈쇼핑 업체의 ‘뻔뻔한 상술’이나 조영남의 ‘피박광박’ 인생은 신뢰와는 거리가 멀어 국민고객을 씁쓸하게 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관행적이던 옛 남북정상회담에 비견하면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월이 만든 분위기 탓인지 이념을 배제하고 사랑과 자유만을 생각하고 싶은 욕심까지 생겼다.

나는 믿는다. 봄이 와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게 아니라, 새가 울고 꽃이 피면 봄이 온다는 사실을. 관행의 틀을 깨야 혁신이 시작되는 법이다. 예상외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판문점 회담의 흐뭇한 장면을 '혁신' ‘평등’ ‘소통’으로 해석하고 보니,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겠다’에 거는 기대심이 꿈틀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