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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 중심에 대하여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시가 당숙의 부고를 받았다. 포항지진 진앙지와 근거리라 관련 피해일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하며 장례식장으로 갔다. 뜻밖에도 농기계 안전사고가 원인이었다. 황망하게 떠나 버린 부친의 초상 앞에서 ‘착하게만 산 아버지, 아무 짓도 안했는데,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자식들이 통곡하고 있었다.

어른의 생활터전은 장성한 피붙이들이 모두 대처로 나가고 고령 부모세대들만 둥지를 지키는 산골이다. 예전보다 도로 사정이 양호한 편이지만 아직도 읍내 장터까지 가려면 버스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 마을. 안태 고향인 그곳에서 어른은 자동차는 물론이고, 스쿠터와 같은 이륜차 면허증 하나 없이 살았다. 자전거 타는 법도 배우지 않은, 그 불편함은 전부 아내의 몫이었다.

몇 달 전 시댁 제사 날, 어른과 작년 가을에 터진 5.6 강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관광도시 경주 경기가 지진 때문에 다 죽었다고 걱정하셨고, 나는 ‘그래도 요즘은 좋아진 편이다’고 도심 소식을 전했다. 그 때 어른은 유소년 시절 얘기도 들려주었다.

“내 얼라 적에 집이 흔들거리고 하늘이 삥삥 돌몬 빗자리 부터 들고 밖에 나가 귀신 쫓는다꼬 밤을 세웠지러”

70여 년 전, 산간벽지 아이들에게 가정교육은 절대효과를 나타냈다. 부모는 조부로부터 배운 학습내용으로 자식을 훈육했을 것이고 그 자식들은 지진(집채가 흔들거리거나 땅이 빙빙도는) 징조를 느끼면 귀신 쫓기로써 목숨을 지켰다는 것. 속설의 힘은 질기고 강했다. 지금까지도 당숙에게 지진발생 원인은 ‘하늘이 노한 탓’이며, ‘조상신은 자정에 오신다’며 기제사 밤 12시를 엄수했다.

그런 분이 팔순 생신상을 받으신 며칠 후, 경운기 운전에 도전 했다고 한다. 당신 손으로 기계를 운전해 보기는 처음이었다는 데, 그날 초보 운전자는 채소를 싣고 내리막 언덕길 운행 중이었다. 한쪽으로 중심이 쏠리자 당황하는 사이 차체가 전복되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뛰어내리는 순발력이 있었다면 살 수 있었는데, 어~어 하는 사이 생사가 갈렸다는 목격자의 증언이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무슨 죄를 지었다고.’ 공감이 되는 자식들의 항변이었다. 사자(死者)는 세금 납부도 잘 했고, 부자(父子)가 병역도 마쳤고, 아이들 공부도 시켰고, 이웃들과도 잘 지내는 소시민이었다. 권력을 기화로 악행을 일삼은 인사들도 천수를 누리는데, 거기에 비해 조금 빨리 갔다 싶으면 억울할 만도 했다. 헌데 따지고 보니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아무 짓(것)도 안한 죄’ 그것이다.

어른은 국민의 4대 의무만큼 중요한 걸 간과했다. 평생 농사일을 하신 분이 호미·낫·괭이 같은 기본 농기구 외 영농활동에 필요한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게 없었다. 21세기 과학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기능습득 훈련에 관심을 안가졌다는 건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장수 유전자, 오염되지 않은 공기, 천연자원 먹거리 덕에 무릇 백수(白壽)는 거뜬했을 터인데 고작 경운기 운전미숙으로 운명하셨다니...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의 아이들은 등하교 시 머리통만한 돌멩이를 안고 계곡을 건넌다고 한다. 급류 속에서 무거운 돌의 중심으로 생명을 보호받는 지혜를 부모로부터 터득한 까닭이다. 거기에 비해 지진 현상을 귀신 소행으로 보고 빗자루로 물리치는 방책을 가르친 조부시대 가정학습, 그 미개한 지식은 줄곧 반복 주입되면서 무의식에 쌓여 소극적인 성격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평생 속설의 오류를 믿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이 시대는 이미 기능 중심 사회다. 전문적인 기술 요구가 높아지는 실정이라 남들 가진 기능을 못 가진 사람은 경쟁력에서 질 수밖에 없다. 직장인들만 그럴까. 과학기술로 재배되는 농작물은 물론이지만 평범한 시골 농사라도 농기계 없이 차별화되는 상품을 생산하기는 어렵다. 기능이 집단을 살리고 개인을 살리는 무기가 되었다.

노년에 새로운 일에의 도전은 박수 받을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운전과 관련 있다면 말리고 싶다. 고령운전자들의 교통사고 증가율을 보더라도 판단력 미숙으로 뜻하지 않은 변을 당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가 있다. 생활에 필요한 기능은 젊은 시절에 습득하여 평생 갈고 닦아야 한다.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길에서 생사존망의 순간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 언제 어디에서 부닥칠지 모를 그 진퇴양난의 지점에서 ‘숙련된 기능’이 생명을 지켜주는 보장보험이 아닐까.

태풍의 영향권 아래서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집채만한 파고가 선체 중앙부를 때려 균열이 생겼다. 자력 항해 불능 상태일 때 몇 십 년 익힌 ‘글쓰기’ 가 힘이 되었다. 이 기능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던 배의 균형수가 되어주었고, 자칫 세월호가 될 뻔했던 나를 살려냈다.

당숙의 사고사는 의미 있는 역설을 남긴 셈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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