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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고 싶은 말, 말들서한숙 /거제문인협회장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밴드방’을 클릭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누군가 보내준 꽃 이야기로 한창이다. 오늘의 꽃은 해국(海菊)이고 꽃말은 침묵이란다. 바닷가 벼랑이나 바위 틈새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꽃이라고 한다. 세찬 바람을 견뎌내고 활짝 핀 그 꽃이 상징하는 의미가 침묵이라고 하니, 새삼 놀랍다.

나지막이 핀 그 꽃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제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다. 그때마다 눈 맞추기를 하다 이름 모를 꽃인 양 그냥 스쳐가곤 했다. 그러던 중 오늘은 이름표를 단 그 꽃을 만나 한동안 바라본다. 연보랏빛으로 무리지어 핀 해국의 자태가 과히 환상적이다. 그것도 실제가 아닌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다.

뒤늦게나마 그 꽃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것이 상징하는 꽃말까지 기억한다. 아침마다 꽃 이야기를 전해주는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을 기억함은 물론이다. 감성에 젖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단 사람들의 이름까지 설핏설핏 기억할 정도이다. 기억하고 싶다고 무엇이든 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클릭을 해야 열리는 가상공간인 것처럼 꽃 이름 또한 관심을 가져야 알 수가 있다.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온기를 불러 모으는 일과도 같다. 가상공간에서의 만남 또한 관심을 가질 때에라야 실상과 같은 온기를 느낄 수가 있다.

스마트폰을 다시 만지작거린다. 이번에는 ‘카카오톡방’을 클릭한다. 여기서도 역시 대화의 창이 열린 지 오래다. 개인톡이든 단톡이든 정(情)나누기가 한창이다.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터라 진동하는 소리가 줄을 잇는다. 간혹 대화의 창이 한밤중에 열릴 때에는 선잠을 자기도 한다. 그럴 때엔 가만히 앉았다가 급기야 메시지를 남긴다. 실상을 떠나 가상공간에서나마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것 같아서다.

그러고 보니, 인간사 모든 것이 폰을 쥔 우리들 손아귀에 놓인 모양새다. 일상으로 나누는 문자메시지도 삶의 한 부분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때로는 이름을 저장하고서도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난데없이 진동으로 흔들어 깨우는 광고메시지도 있다. 낯선 사람의 이름까지 다 기억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일도 일상처럼 이어진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전천후 기기인 셈이다. 삶의 길라잡이가 될 정도로 실상과 허상이 뒤바뀌는 형국이다.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주 앉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스마트폰 안에서의 만남을 중시하는 풍토이다. 높푸른 하늘빛도 따사로운 햇살도 가을꽃 향기도 모두 다 가상공간 그 안에서 찾고 있다. 그런 사람들 속에 내가 있음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삶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부득불 그림전시실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한 사람이 전시실을 찾은 것이다. 그때 그는 한참동안 그림을 감상하다가 ‘한마디’를 남겼다. 그것은 스마트폰 안에서 흔히 나누는 그런 문자 이야기가 아니었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닌 것처럼, 겉말과 속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떤 시련을 견뎌내고 침묵으로 일관한 채 활짝 핀 ‘해국’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는 신기루를 본 듯한 표정으로 “대단한 그림!” 이라고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고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더듬더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 본 그의 표정은 환희 그 자체였다.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한 화백의 예술혼이 전이되어 수십 년 전에 실명한 그의 눈을 되찾기라도 한 것일까. 눈이 멀쩡한 사람은 그림의 부분을 보고 점이 빠졌다고들 불만투성이인데, 그는 시각장애를 겪으면서도 그림 전체를 꿰뚫어보듯 만족을 했다. 가상이 아닌 실제공간에서 말이다.

그가 남긴 한마디가 불현듯 여백의 미를 확장시키는 즈음이다. 스마트폰 세상에 빠진 나를 일깨우며 실제공간과의 접속을 재촉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온도를 직접 체감하는 일이 우선임을 알린다. 눈만 뜨면 글말로 고심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말, 말들의 본질이 살아있는 현장임도 알린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우리가 간간이 클릭을 멈추어야 하는 이유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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