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온 산천에 꽃을 뿌리고 한 차례 지나갔다. 장미, 찔레꽃, 아카시아, 유자꽃 등 사계절 중 제일 행복한 오월을 장식한 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가시가 돋은 꽃이 대부분이다. 오월의 꽃들은 색깔도 향기도 생긴 모양새도 너무나 아름다워 바라보기만 해도 그 황홀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만큼 그윽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오월의 꽃들은 그것도 모자라서 가시까지 겸비하여 그 오만함은 극치에 달한다.

이제 유월이다. 유월의 꽃들은 향기와 모습이 한 눈에 띄는 아름다움보다 수수한 차림새로 산야를 밝히는 들꽃들의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많은 들꽃 중 유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꽃이 바로 개망초꽃이다. 어쩌면 유월이 개망초꽃을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개망초꽃이 피어서 유월이 찾아오는지도 모를 만큼 유월은 지천에 개망초 꽃이다.

개망초꽃은 자리를 찾아가며 피지 않는다.
어디라도 좋다. 그곳이 빈들이든, 언덕배기든, 공터이든 산비탈이든 어디에나 자리를 틀고 꽃대를 올린다. 개망초 꽃의 꽃대는 잔털이 보송보송 풀 전체를 덮고 있으며 꽃대가 30에서 100센티미터쯤 자라면 가지를 치고 유월 칠월이 되면 꽃을 매단다. 자주빛 하얀빛 두상화가 산방꽃차례를 이루며 가지 끝 줄기 끝에 가지런히 꽃을 매단다. 이 개망초꽃은 혼자서 고고히 피어 흔들거리는 꽃이 아니다. 장소가 어디이든 무리지어 피어있어 개망초꽃이 핀 곳은 이효석이 말한 매밀꽃보다 더 소금을 뿌려놓은 것처럼 하얗게 빛난다.

개망초꽃은 원래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라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토종 개망초꽃도 있지만 전세계 250여 종 중 우리나라 순수토종보다 귀화된 종류가 많다고 하며 민방초, 개망초, 실망초 주걱개망초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런 이름 없는 꽃을 노래한 시인이 있다.
눈치코치 없이 아무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저곳 널린 밥풀같은 꽃이라고하지만 /개망초꽃은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은 늦여름 한 때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이 세상 한 쪽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훗날 그 보잘 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것이 /어느 들기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안도현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개망초꽃은 주인 없는 산야에 목적 없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야 피어난다고 노래하지 않는가?

개망초꽃이 그런 꽃이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해마다 여름이 오면 소를 끌고 이 개망초꽃이 피어난 산비탈을 찾아가 풀을 먹였다. 두 눈을 껌뻑거리며 개망초꽃을 한웅큼씩 혓바닥으로 끌어당겨 우적우적 씹어대는 그 소를 바라보며 입속으로 들어가는 하얀 꽃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땐 그냥 소가 좋아하는 풀인 줄 알았지 그 꽃 이름이 개망초꽃인 줄도 몰랐다.

그런 개망초꽃이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6.25 전쟁영화를 본 후부터였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한 병사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한다는 욕망으로 한 무더기 들풀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다 죽어갔다. 병사가 죽어가는 산야엔 병사가 끌어안고 몸부림친 하얀 개망초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전쟁의 돌파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피난민들의 피난길에도 어김없이 개망초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피난민들과 애닮음을 함께 했고, 피투성이가 된 장병의 시체위에도 개망초꽃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후로 유월이 오면 시골길을 하얗게 장식하는 그 개망초꽃이 아름다움으로 보이기보다 어쩐지 애잔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 꽃 이름이 개망초일까? 논과 밭에 무리지어 피어나 농부를 괴롭힌 덕분에 붙여진 이름일까? 아니면 6.25로 인해 나라를 잃은 설움을 당할 때 피어나는 꽃이라서 좋지 못한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아무튼 이 꽃은 전쟁의 포격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지금도 조국의 산야를 지키는 유월의 산 증인이 되어주고 있다.

6월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유월이지만 올해는 좀 더 유월을 의미 있게 보냈으면 좋겠다. 개망초꽃이 그 혼돈의 세월을 이겨내고 아직도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서 이 산야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도 개망초꽃이 피는 유월이면 호국영령과 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영혼들을 위해 한 번쯤 기도해 보는 유월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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