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하청면은 우후죽순, 죽순 천지이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¹⁾” 땅 속 줄기에서 뻗어나 여기저기 죽죽 솟아오른다.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도 하늘높이 치솟는다. 울울창창 대숲의 경지를 과시하면서 그곳이 맹종죽의 본고장임을 알린다.

맹종죽은 대나무 중에서 굵기가 가장 굵은 종(種)으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속을 비운 채 마디마디 매듭을 짓고 곧게 뻗어난다.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으니, 자라나는 속도가 여간 빠른 것이 아니다. 하루에도 쑥쑥 자라나 한 달여 만에 20m까지 자란다. 이후에는 굵어지지 않고 단단해지기만 한다.

거제도가 맹종죽의 시배지가 된 것은 90년 전의 일이다. 소남 신용우 선생이 일본에 갔다가 거제 기후에 적합한 묘목 세 그루를 들여와 자택 뒷산에다 심은 것이 계기이다. 그 중에 두 그루가 생육에 성공함에 따라 지역 특유의 향토자원으로 꼽힌다. 하청면에서만 무려 500만 여 그루의 군락지가 형성되는 등 국내 맹종죽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맹종죽’은 효자 맹종의 이야기로부터 전래된다. 구전설화에 의하면,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한겨울임에도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자, 눈이 쌓인 대밭으로 뛰어나간 맹종은 죽순을 구하지 못해 밤새 주저앉아 울었는데, 그때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눈이 녹아 기적처럼 죽순이 돋아났고, 이를 먹은 어머니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 말하자면, 아들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하늘이 내린 죽순인 것이다. 이는 효를 상징하는 하나의 의미가 되면서 거제맹종죽의 유래를 뒷받침한다.

그렇듯이 거제도는 사시사철 죽향(竹香)이 살아있는 맹종죽의 산실이다. 더불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효행임도 일깨운다. 하청면 언저리에 있는 거제맹종테마공원(3만평)은 그림 같은 칠천도 앞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죽림욕장, 송림욕장, 모험의 숲이 함께 어우러져 누구나 즐겨 찾는 힐링의 공간이다. 해마다 맹종대나무축제를 열어 먹거리와 볼거리는 물론 다양한 체험거리로 색다른 묘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뿐이랴. 무심결에 보이는 ‘시의 거리’는 시인의 소리를 대숲의 행간에다 내걸고 드문드문 리듬을 탄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속을 비우는 시인처럼, 속을 비우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고요 속에 잠든 시심(詩心)도 흔들어 깨울 수가 있다.

맹종죽림욕장에는 무념무상의 경지가 따로 없다. 대숲이 깊어질수록 시심도 자연히 깊어진다. 삶의 여백도 함께 묻어나고 있다. 저만치 어울림길이 보이더니, 사색죽(竹)길도 보이고, 회상죽(竹)길도 보인다. 어느 길로 간들 어떠하리. 길은 다 길인 것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된다. 길을 가다가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잠시 쉬었다 가자. 그 자리가 마음자리이니, 마음을 다 부려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길이 보이고, 대숲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있다.

죽죽(竹竹), 맹종죽 소리가 들려온다. 빼곡히 들어찬 대숲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른빛 일색인데, 지역경제는 여전히 암울하다. 바깥온도는 올라가는데, 체감온도는 낮아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도 자연히 낮아지고 있다. 틈새전략인가. 반전을 위함인가.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 생장점이 멈추어도 단단해지기는커녕 좌불안석이다.

조선업종 불황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디마디 매듭을 짓지 않았는데도 비워야 한다. 비우지 않았는데도 떠나야 한다. 다들 어디로 떠나려나. 비울수록 단단해지는 대숲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90년째 뿌리를 내린 거제맹종죽(竹)의 끈질긴 생명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즈음이다. 봄날, 맹종죽 소리가 죽죽(竹竹) 커져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1)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선생의 시조 「오우가(五友歌)」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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