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366번지.

내 유년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고향 주소이다. 새벽에 눈을 뜨면 바다에서 솟아오른 태양이 반짝이는 윤슬로 기어와 60여 호 바닷가 오막살이 집들이 있는 마을까지 도착되면 햇살이 건너온 바다 저편에 말없이 앉아 있는 섬 하나가 보였다. 그 섬이 바로 내 어릴 적 기억의 지심도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눈 비비고 일어나서부터 어두움이 내려 시야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당만 나서면 늘 보아왔던 섬이었다. 그렇게 바로 눈앞에 그림처럼 앉아있는 섬이었지만 그 당시엔 고깃배를 타는 어른 몇 분을 제외하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지심도를 가 본 사람은 없었다.

좀 더 성장하여 어머니로부터 들은 지심도의 스토리텔링은 어린 내가 매일 들어도 지겹지 않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고된 시집살이에 눈물이 마를 길 없는 우리 마을 아낙이 있었다. 며느리가 미워 마른 나뭇가지 대신 생솔가지에 불을 지펴 저녁을 지으라는 시어머니의 엄명에 며느리는 생솔가지에서 나는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너무나 서러운 맘에 부지깽이를 들고 사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친정도 가고 싶고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고달파 앞치마에 눈물을 훔치며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 때, 갑자기 섬 하나가 둥둥 마을을 향하여 떠들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아낙은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섬이 들어온다고 마을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옥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바다를 쳐다보니 정말 섬 하나가 둥둥 떠서 마을로 향하여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을 사람들도 ‘섬이 둥실둥실 떠들어오고 있다’ 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섬은 그만 이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뚝 서 버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지심도는 지금의 그 곳에서 자리를 틀고 우리 옥림 마을과 얼굴을 마주 보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아낙이 경망스럽게 섬이 들어온다는 말을 하지 않고 좀 기다려주었다면 지심도는 옥림 마을 앞까지 들어와 그 섬을 오고 갈 수 있는 섬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담긴 스토리텔링을 지금도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때 그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섬이 들어온다고 소리친 아낙 덕분인지 지심도의 옛 주소가 ‘경남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57-1 번지’이다.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지심도가 우리 옥림 마을의 지심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 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 마을의 부자 어른이 만든 큰 배를 타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몇 회에 걸쳐 그 지심도 구경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장승포에서 15분이면 도착되는 지심도를 그 때 생각엔 한 나절을 배를 타고 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선착장도 없어 섬 언저리에 겨우 배를 접안한 후 장년의 어른들이 우리 같은 어린 학생들을 업어서 섬으로 올려주었다. 그 때 기억으론 섬 전체가 나무로 덮혀 하늘이 뵈지 않았고, 바람을 못 이겨 누운 나무 사이로 떨어진 동백들은 붉은 피를 토하며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나와 함께 지심도 여행을 했던 다섯 명의 친구들도 그 때 그 꽃 이름이 동백인 줄을 정말 몰랐다.

거제시는 지난 9일 오후 2시 태평양이 훤히 보이는 지심도 활주로에서 관련 공무원들과 거제시민들이 함께 하는 지심도 소유권반환 기념행사를 열었다. 지심도는 일제 강점기던 1936년 일본의 병참기지로 이용되면서 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군(軍)에 수용된 지 81년 만에 거제 시민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니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자신의 물건이 자기 손을 떠나간 후 다시 내 손으로 들어오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개인의 일이든지 아니면 공적인 일이든지 일단 소유권이 넘겨진 후 다시 찾아 제 자리로 돌려놓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소유권 반환이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제일 먼저 소유권을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하여 여러 해에 걸쳐 숨은 노력을 한 관련 기관과 그 일을 추진한 장본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인 반환이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지심도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관련기관과 관련된 사람들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들의 의미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이 되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지심도가 거제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26만 거제시민의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심도가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아닐까?

20여 년 동안을 살아오면서 한 번 밖에 가 보지 못한 지심도를 반짝이는 잎들이 그립고, 확 트인 바다가 그리울 때면 그냥 훌쩍 유람선을 타고 이웃집 나들이 가듯이 자주 가게 되었다. 선착장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숲길은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끌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 응어리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그 섬을 돌아설 땐 또 다른 희망이 뒤따라 나서는 섬이다. 언제 찾아가도 정갈한 밥상에 된장국 한 그릇, 자반 한 마리 구워 친정집 밥상같이 행복한 섬, 꾸미지 않는 소박함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지겹지 않는 훈훈함이 묻어나는 자연이 숨쉬는 섬. 그러고도 섬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석들로 밤하늘이 그리워지는 그런 섬. 지심도는 그런 손때 묻지 않은 섬이었음 좋겠다.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we smarter than me). 집단지성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집단지성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또는 경쟁을 통해 얻게 되는 집단적인 지적 능력을 말한다. 요즘은 기업들도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산업과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금껏 우리 것으로 되찾기 위한 노력에 걸맞게 새로 찾은 그 섬을 위하여 우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집단지성의 공헌을 생각해 볼 일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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