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지진(地震)에 흔들리고, 인진(人震)에 무너지고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그놈 따매 몬살것다, 몬살어” 경주 본가에 안부전화를 넣자 수화기 속 시모의 화난 음성이 들렸다. 멧돼지가 고구마 밭을 습격한 줄 알았더니, 연일 계속되는 ‘여진’을 두고 한 말이었다. 작년의 ‘그놈’은 ‘멧돼지’였는데 올해는 ‘지진’으로 대체된 것이다.

예고 없이 나타나서 수확 직전 작물을 휩쓸어버린 늦가을 야생동물처럼 지진은 이제 주변에서 존재하고 있다. 화분이 넘어지고, 가구가 흔들리고, 몸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규모 5.2 지진. 40여분 뒤 5.8 본진이 터졌을 때 집안에 담겨있던 주민들이 밖으로 쏟아졌고, 고층건물을 피해 공터로 모여 불통 폰을 붙들고 발을 굴렸다. 대피요령을 알리는 공적 정보가 늦장을 부린 탓이다. 그 당혹함은 멧돼지와 부닥쳤을 때와 같았다.

산행 길에 먼발치로 멧돼지를 본 적 있다. 시커멓고 날렵한 주둥이로 갈잎을 파헤치고 있던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부동자세로 얼어붙었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났을 때 퇴치방법’은 무용지물이었다. ‘자기를 헤칠 기미가 없으면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므로 돌을 던지거나 고함을 지르면서 도망을 가면 위험하다’는 머릿속의 이론이 실전에서 기억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비슷한 현상이 지진 현장에서도 일어났다.

10년 전, 일본 후쿠오카에서 화재·강풍·호우·지진에 맞서는 체험을 했었다. ‘시민 방제센터’, 그곳은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자연재해 시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훈련은 실제 지진으로 송두리째 사라진 마을과 비슷하게 만든 세트장에서 실시되었다. 실험자가 식탁에 앉으면 집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력에 의해 강도가 단계별로 높아지는데 상부의 사물이 낙하하면 일단 가스 밸브부터 차단한다. 다음은 방석을 머리에 쓴 채 식탁 밑으로 들어가고 정전이 되면 깜깜한 퇴로를 따라 비상구를 찾는다. 물 묻힌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는 낮은 자세로 침착하게 밖으로 나온다. 그밖에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했고, 인공호흡, 응급처리방법도 익혔다.

그날의 현장실습이 글 쓰는 지금에서야 환기되고 있다. 다행히도 경도치매 증상은 아닌 모양. 일회성 실습이 반복되지 못한 채 방치 된데다 나이 먹은 뇌에 과부하가 걸려 건망증을 일으킨 것 같다. 어쨌든 강진으로 인한 공포감이 극도에 닿았을 때 생각나는 것은 <대지진>이란 영화였다.

영화는 중국 당산에서 실제 일어난 대지진이 배경이다 1976년 7월 28일 새벽, 진도 7.9 규모의 강진이 단 23초 만에 마을 전채를 앗아갔다. 27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16만 명이 넘는 부상자를 기록한, 세기의 재난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어머니의 외침’이었다. 엄마는 건물더미에 깔려 죽어가는 여식을 보면서 살려달라고 발버둥 친다. 그때 구조의 손길 대신 여진이 덮친다. 자식이 압사하자 어미는 울부짖는다. 활화산 같이 터진 절규의 대상은 하늘이었다. ‘하느님~ 개새끼야~’

여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간 자식을 살려내기도 한다. 이를 ‘엄마’라 부르고 ‘모성’이라 읽는다. 이 신비한 초능력을 과학도 답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은 ‘신(神)의 영역’까지는 닿을 수 없다. 이때 어미는 신에게 달려든다. 혹자는 ‘당신의 자식을 특별히 사랑해서 빨리 데려 갔다’고 위로할지 모른다. 자식의 죽음 앞에 선 어미에게 그 말은 설득력이 없다. 새끼의 주검은 팩트이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미증유다. 삶의 가치는 현존 안에 있는 법, 죽음은 모든 것과 단절을 의미한다. 신의 섭리라는 당위성을 개나 줘 버려라는 심정으로 소리친 것이리라. 그 처절한 단말마가 영화 전편을 방증하는 압권이었다.

“하느님, XXX야”던 외침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천재(天災)가 잠시 멈춘 사이 인재(人災)가 터졌다. 멧돼지 아니, 리히터 규모 7,9 못지않은 인진이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진원지는 청와대 쪽이다. 법은 그곳에 초점을 맞춰 원인분석에 들어갔고 대책강구 중이다. ‘인과의 법칙’에 따라 결판이 나겠지만 복구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조짐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지진도 아니고 범위를 넓혀가는 블랙홀을 보면서도 눈치만 봐 오다 더 내려앉은 모양새다. 후폭풍이 몰아치는 중심에서 국민들은 살맛을 잃고 있다. 대실소망하여 광장에, 도로에, 사이버 공간에 모였고 <대지진>의 어미같은 심정으로 황망함, 비통함을 표출하고 있다.

경로당에 가신 어머님께, 그쪽 번호로 전화를 드렸다.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수화기를 든 노모께서 예의 그 건조한 음성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X 따매 몬살것네, 몬살것어”
노모의 ‘그놈’이 ‘멧돼지’에서 ‘지진’, 이제 ‘그X’으로 이동했다. 뿐만 아니다. 7080 노인들의 이구동성이 통화 틈새로 생중계 되는데, 전부 인진의 두 주범을 향해 어세가 서 있다.
“멧돼지 같은X 헤악질에 나라가 거덜났네”
“피붙이가 없어 깨끗이 더 잘할 줄 알았더이 우찌 그런 X한테 당하노”
“천치 같기도 하고 불쌍키도 하고...”

국가 침하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민초들의 리얼리티, 우째 이 현장여론이 인사들의 거대담론 보다 더 정확하게 들린다. 모두들 박통의 골수팬이신데, 안타까운 일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