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를 밴 유기견이 거제시유기동물보호소에 입소한 지 이틀 만에 숨졌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시·군·구는 구조된 동물을 주인이 찾을 수 있게 보호사실을 7일 이상 공고해야 하는데 이 유기견은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뱃속 새끼들과 눈을 감아야 했다. 이 죽음을 두고 안락사 논란이 불붙었다.

지역 대표 동물보호단체인 거제유사모(유기동물을 사랑하는 모임)에 따르면 이 만삭견은 보호소로 오기 전 장목면 모 펜션에서 6일 정도 보호를 받았다. 낮에는 관광객과 잘 어울리다가도 밤에는 인기척이 나면 짖어대 결국 민원 때문에 지난 18일 보호소로 들어가게 됐다.

사건 은폐 정황 드러나
입소 당시 유기견의 임신을 확인한 유사모의 한 회원은 이틀 뒤인 20일 오후 보호소를 찾아가 유기견의 출산을 돕기 위해 임시보호를 하겠으니 데려가겠다고 했다.

이에 보호소 측은 유기견의 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 전에 지역 동물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했다. 유기동물의 산파 경험이 많았던 이 회원은 그 유기견이 아직 출산 시기가 아닌데다 과거에도 동물병원에서 유기견이 출산 중 폐사한 전례가 있어 해당 병원에 급히 연락해 상태를 물었다.

이 회원에 따르면 병원장은 새끼를 낳다가 어미가 죽었다고 답했다. 회원이 아직 출산시기가 아니었다며 따져 묻자, 그제야 원장이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사모의 다른 회원이 병원으로 달려가 간호사들에게 재차 확인해보니 지난 밤 만삭견이 입원한 사실이 없고, 원장도 거짓말을 시인했다고 한다.

유사모 측은 시청 담당자에게 전화해 진실을 요구하자 담당자는 이날(20일) 아침 보호소에서 죽었다고 실토했고, 병원에 거짓말을 시켰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통화가 끝나고 몇 분 뒤 이 만삭견은 동물보호관리시스템 인터넷 사이트(농림축산검역본부)에 보호조치 공고가 게시됐고,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연사’로 수정됐다.

이 담당자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도 거짓말을 시인했으며, 사건이 커질 것이 우려돼 잘못된 방법을 썼다고 털어놨다.

안락사인가, 자연사인가?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만삭견의 죽음이 시청의 의도적인 안락사라고 확신한 유사모 측은 자신들의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이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그리고 시청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안락사를 반대하는 전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시 담당부서는 당일 아침 유기견의 사체를 발견했을 뿐 폐사원인은 알 수 없다며 안락사를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유사모 측이 포착한 몇 가지 정황들이 안락사 주장에 힘을 실고 있다.

먼저 구조 당시 만삭견의 건강이 매우 양호했다는 것이다. 털이 군데군데 빠져있었지만, 그 부위를 관광객들이 어루만져 줄 만큼 진물이나 고름 없이 깨끗했다고 한다. 유기견을 임시보호하던 신고자 역시 유사모 인터넷 카페를 통해 “병든 아이가 아니었다”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유사모가 안락사를 확신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거제시가 지난 19일 유기견 29마리를 대상으로 ‘인도적 처리’를 강행했다는 사실이다. 동물보호법에서는 ‘안락사’라는 용어 대신 ‘인도적 처리’라고 표현하는데 거제시에서는 두 용어를 구분하고 있다. 안락사는 병들어 목숨이 위태한 개체에 대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고, 인도적 처리는 수의사가 선별한 개체에 대해 강제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반면 민간에서는 같은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반대하는 유사모 측은 29마리의 죽음과 더불어 새끼를 밴 어미견까지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비인도적 처사라며 매우 침통하고 분개한 분위기다.

유기동물 수용 한계 도달
이 일이 각종 통신수단을 통해 일파만파로 알려지자 거제시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실 거제시는 일부에서 유기동물의 마지막 안식처라 불릴 만큼 생명사랑에 모범을 보인 도시다. 최근 몇 년간 ‘인도적 처리’는 한 건도 없었고, 지난해에는 사등면에 있는 유기동물보호소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억 5000만 원을 들여 증축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거제시와 거제유사모는 갈등과 타협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동물복지를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그러나 거제는 섬 특성상 반려동물을 버리고 가는 관광객이 적지 않은 편이었고, 그런 데다 안락사 없는 도시로 알려지면서 유기동물 개체수가 더욱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인도적 처리’는 사실상 행정이 유기동물 수용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또 앞으로도 안락사를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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