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삼성중공업에서 실시하는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쓰기 대회의 심사를 하였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실시하는 편지쓰기 대회로 거제시에 거주하는 초중학교 4000여 명의 학생들이 부모님께 드리는 이 편지는 심사를 거친 후 직접 부모님께 우송되었다. 부모님들은 편지의 내용에 관계없이 자녀들이 보내는 이 편지를 받고 자녀들의 성장에 흡족해 하고 삶의 행복을 느끼며, 또한 부모는 숨겨놓고 보여주지 않던 자녀의 마음도 엿보게 된다.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낳아주시고 길러주어 감사하다는 이야기와 앞으로 정말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바르게 자라겠다는 약속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편지쓰기 대회의 작품 속에는 한결같이 부모님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회사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행여 퇴직자가 되면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어른이 해야 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중학생은 중학생 수준에 맞게 아버지가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근무하시라는 당부의 이야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의 편지 내용이 이래야 하나? 회사가 어렵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직장을 잃게 되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의 글을 보면서 우리 거제의 어려움이 자녀에게 까지 전달되었다는 사실에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왔다.

물론 자녀들도 부모님의 직장을 걱정해야 하고, 서로 위로하고 보듬으며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은 매우 바른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아버지만은 회사에 남아있어야 하니 회사에서 최선을 다 하여 일하라는 당부는 어른으로서 미안하기까지 했다. 자녀들의 이런 표현은 부모님의 대화를 통해 가정의 가장 큰 문제로 다가갔거나 아니면 언론의 역할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 혼란하고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 지 걱정하는 부모님의 말씀에 아직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자녀들은 부모님보다 더 걱정되고 불안하였던 것 같다. 초.중 학생들은 부모님의 모든 것이 바로 자신들의 앞날이라고 믿는 시기이므로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는 무엇일까? 맥 빠지고 힘든 출근길에 그래도 우리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이 솟는 그런 에너지를 어디서 찾을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오월을 떠 올리게 되었다. 지천으로 단내를 풍기며 하늘을 덮는 아카시아꽃의 향연, 그 오만한 가시를 내세우며 울타리를 넘어서는 장미며,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면 환희의 물결로 다가서는 저 오월이야 말로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되어졌다. 그리고 이런 싱그러운 오월을 노래한 오월의 詩를 머리에 떠 올려 보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 내를 풍기며 /오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진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황금찬 시인의 오월의 노래이다. 참 행복하다. 그냥 쭉 한 번만 낭송해 봐도 걱정이 없어진다. 꽃 잎 진 빈 가지에 누구의 사랑이 지는 것도 알 필요가 없다. 오늘 날고 있는 새가 지난해의 그 새가 아니면 어떠랴. 더욱 알 필요가 없다. 더구나 오월은 병풍에 그려진 무생물도 꽃이 되어 살아난다니 얼마나 희망적이고 행복한 나날이 될까? 어려워도 그냥 이 오월을 사랑하며 살아보자

어디 황금찬 시인만 오월을 노래했을까? 이번엔 피천득 시인의 ‘오월’을 가슴에 담아보자.
오월은/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나는 오월 속에 있다 (생략)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오월은 찬물로 세수한 청년의 얼굴이라고 했다. 청년! 듣기만 해도 가슴이 요동치고, 풋풋함이 풍겨나고, 절대 절망이 없는 낱말이다. 이런 오월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즐겁다고 하지 않았는가? 녹음을 머리에 이고 머문 듯 가는 세월에 정열을 퍼붓고 순결한 오월로 지금 가고 싶다고 노래한 것처럼 어려운 일일랑 그대로 접어두고 ‘오월’은 행복해지리라.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처럼 우리도 이 번 오월은 어려움들은 잠시 뒷전에 두고 좀 행복해 보자. 이 어려움도 살아있기에 당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오세영 시인의 오월을 들어보자.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눈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 푸른 이 봄날/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먼 하늘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

오월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입속에서 푸른 휘파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오월이다. 우리네 생활이 어렵긴 해도 사방을 둘러보고 신록이 주는 푸르름을 바라보며 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겨내 보자.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도, 앞을 내다보는 눈길도 오월의 신록과 같은 환희의 기쁨이 되게 하자.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부모님으로부터 이 어려움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긍정과 희망의 눈길을 저절로 배우게 될 때, 우리 아이들의 편지 속에는 웃음이 묻어나는 희망적인 글귀가 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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