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필요 없는 대화였다. 가로, 세로 각 19줄, 361개의 점을 놓고 벌인 그것은 수담(手談), 즉 손으로 나누는 대화였다.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긴 바둑이어서 인간이, 인공지능(알파고)에게 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다. 경기의 승패보다는 그들이 나누는 수담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도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세돌-알파고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시작되자, 이세돌은 5판 3선승제에서 알파고에게 내리 3패를 당해 어이없이 완패를 했다. 경기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4국에서 신의 한 수를 찾아 전체 판을 뒤흔들었지만, 5국으로 이어져 판세를 뒤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로 인한 충격의 파장이 벌써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흑백이 교차되는 가운데 수담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 직관도 창의성도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둑판의 여파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인간에게 승기를 넘겨받은 알파고가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시대가 도래함을 단단히 일러준 모양이다.

그날 시상식에서 우승자에게 명예 9단증을 수여했지만, 정작 알파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신이 인공지능(AI) 프로그램임을 밝히듯, 이를 개발하고 총괄한 데미스 하사비스가 우승컵을 안고 기쁨을 나누었을 뿐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형체조차 없는 인공지능의 진화 속도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해 바둑판 너머의 세상으로 가파르게 확산되고 있다. 어디에서든 인공지능에 의존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기계화된 인간들의 군상들도 손쉽게 만날 수가 있는 현실이다. 자충수(自充手)가 아닐 수 없다. 기술문명의 발달로 익숙해진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도 벌써 오래이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가 생각나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이 그리워지는 즈음이다. 신이 죽은 사회에서의 인간은 종내 초인(超人)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의 기계화’와 함께 ‘기계의 인간화’를 꾀하는 일도 결국은 초인을 향한 인간의 포석(布石)으로 해석된다. 그런 이유로 기계의 속성을 지닌 알파고가 인간의 속성을 닮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기 위한 하나의 생존방식인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은 자의식이 없어 인간의 명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점을 갖는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공지능의 우위에 놓인다는 점은 그나마 희망적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인공지능, 로봇, 생명과학 등의 발전으로 2,020년까지 약 5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진다. 또 올해 입학한 초등학생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는다. 이러한 전망치는 앞으로는 기존가치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에 대한 방증인 셈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함에 따라 20년 이내로 일자리가 50%에서 80%까지 감소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즈음이니, 일자리는 물론 인간의 자리조차 위태위태한 실정이다.

더욱이 영화 ‘로보캅’, ‘터미네이터’처’럼 로봇에 실제 인간의 뇌를 연결한 인공지능로봇이 최근 개발된 적도 있다. 인간이 손을 펴면 로봇도 따라 펴고, 손을 오므리면 로봇도 따라 오므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는 인간의 뇌로부터 발생한 전기신호를 무선통신첩을 통해 로봇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서, 기계와 사람과의 결합, 즉 사이보그의 현실화가 머지않았음을 예고한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갈수록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공존, 상생하지 않으면 인간이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수록 감성과 창의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선거판, 정치판에서처럼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자는 문제를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이 소통하는 즐거움을 찾았듯이, 세상 속 흑과 백이 모두 상생,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자는 이야기다. 신(神)의 한 수를 찾아내 인간의 존재가치를 무한대로 일깨워준 이세돌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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