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3월, 봄이 찾아왔다. 일상에서 잠시 눈을 거두어본다. 산은 겨울옷을 하나씩 벗어 내리고, 정원의 나무들은 새눈을 틔우기에 전념한다. 성급한 매화는 벌써 꽃을 깨워 벌을 기다린다. 이제 삶에서 여유로워진 나는 들판으로 나선다. 역시 그곳도 봄이 한창이다. 조용히 무거운 흙을 밀어 올리며 일어선 쑥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벌써 잎이 제법 자랐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처럼 묵은 풀숲에서 제 존재를 알릴뿐이다. 이 조용한 변화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잔혹한 겨울을 넘어 왔으면서도 이들은 요란함이 없다. 어둡고 차갑고 지저분한 땅 속에서 자신이 경험한 겨울의 한파를 그들은 입에 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게 넘어온 겨울이라며 의연하게 뒤로 물릴 뿐이다. 봄이 와서 이젠 한결 수월해졌다고 너스레를 피움도 없고, 그냥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 긴 겨울의 고통을 이겨낸 자만이 갖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일지도 모른다. 실야 엄청난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 아픔을 결코 입에 담지 않지만, 조그마한 돌에 넘어진 사람은 무릎의 통증을 말한다 하지 않았든가.

세상에 나와서도 옆의 친구의 삶을 넘보지 않는다. 옆의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은 얼마나 단단한지 마음 두지 않는다. 옆의 친구의 혈색을 바라보면서 자신과 앞으로 있을 경쟁을 가늠하는 법도 없다. 오로지 자신에 몰두하여 제 매무새만을 가다듬을 뿐이다. 무리지어 힘을 과시하지도 않으니, 들판에 나서도 세상은 온통 조용하다. 멱살 잡고 싸우는 자도 없고, 이웃과 말다툼하는 자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꾸리며 조용히 봄을 맞는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긴 공백을 깨고 다시 인간들의 정치의 계절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진정 봄이라는데 우리의 이 계절은 왜 이리 시끄러운지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온통 정치의 아수라장만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종편에는 아예 가지 않으려 해도 정치의 현상은 생소한 형태를 하고 나타나서 자기들을 지켜보라 한다. 귀찮아 아니 보려 해도 다가서는 현실.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나는 왜 이런 생각을 이 들판에서 보잘 것 없는 들풀 앞에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만큼 엄살이 심한 동물이 있을까. 특히 한국의 정치인만큼 엄살이 과한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 자신이 걸어온 길은 굳이 제 입으로 웅변할 필요가 없다. 늘 보아주는 이웃이 있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조용히 있어도 다 아는 사실을 굳이 목청을 돋우며 외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염치도 없이 나타나서 자기가 이곳을 위해 일할 가장 적임자라고 설쳐댄다. 그 말에는 아무도 귀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아는데 그만이 모르고 있다. 그런 정열은 평소에 쏟아 두는 것이 현명했을 텐데 말이다. 직함이 없어서 못했다고 하려나. 일하는 사람은 어떤 직분이 주어지지 않아도 할 일은 한다.

흔히 19대 국회의 점수가 역대 가장 낮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들이 국회에 나가서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하고 국민이 되묻는다. 그 많은 국민의 혈세를 털어 먹고 한 일이 무엇이냐고 투덜대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도 정쟁이나 하고, 계파간 샅바만 움켜쥐고 있다. 국민 모두가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데 오늘도 그들은 여전히 샅바싸움이다.

평소에 정치인이 입술 부르튼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국민을 위해 날밤을 새우면서 부르튼 입술이라면 나는 무조건 한 표 얹어주고 싶다. 그러나 요즈음 그들은 국민은 뒤로 밀쳐두고 오로지 정쟁을 하면서 제 계파의 이득을 위해 입술이 부르트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부르튼 입술로 국민 앞에 나서는 그들의 몰골을 바라보면서 측은하기보다는 안쓰러움을 더 느낀다. 굳이 저렇게 정치를 하면서 살 일이 무엇인가 하고 묻고 싶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득과 정파간의 갈등과 계파간의 이해타산으로 날밤을 새우고 입술이 부르튼 모습을 마치 훈장이나 단 것처럼 여기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정치의 계절이 와도 국민에게 제시하는 정책이 없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도 없고, 여당과 야당도 그게 그거다. 정치적 철학도 없어졌고, 오로지 금배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평소엔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나와서 판을 시끄럽게 한다. 이러다간 정책 제시도 못하고 유권자에게 차별화되지 않으니, 수식어도 없이 무조건 한 표만 달라고 조를 것인가. 2016년 대한민국의 봄은 너무도 안타깝고 지겹도록 시끄럽다.
그토록 혹독한 겨울을 지나왔어도 말없이 제 일에만 전념하는 들풀의 진실한 삶을 배우자. 저 들판이 이 계절에 우리에게 보내는 말씀에 귀 기울이자. 문득 그냥 침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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