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우리는 12월을 보내게 된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았던 신년의 계획이 어디에서 맴돌고 있는지 채 헤아리기도 전에 우린 12월을 맞게 된다. 대부분 우리의 삶이 그렇게 보내지고 있다. 12월에 서서 1년을 뒤돌아보면 참 잘 살았다는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아쉬움이 남고, 이유 없는 슬픔과 미안함에 후회가 된다.
12월은 참 이상한 달이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 스스로가 나를 뒤돌아보게 되고,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내 잘못이 저절로 생각나게 되어 괜히 그 잘못의 깨달음 때문에 내 스스로가 12월 앞에서 의연해진다.

12월이 아직 며칠 남았다. 12월이 다 가기 전에 제일 먼저 잊고 있었던 사람을 생각해 보자. 삶에 바빠서 오늘 내일 미루다가 늘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내게 된 그런 사람을 생각해 지금 당장 소식을 전해보자. 또박또박 손 글씨로 편지를 적어 안부를 전하는 그런 정성이 아니더라도 잠시 짬 내어 그리운 목소리를 기억해 보자. 내 안부 전화를 받고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 할 상대방을 생각해 보며 잊고 있었던 사람에게 소식을 전해 보자.

12월이 다 가기 전에 별 뜻 없이 내가 건넨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얼른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하는 사과를 하자. 참 별일이 아닌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인 일은 없었는지?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여럿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핀잔을 주었던 일은 없었는지?, 업무적인 차질로 최선을 다한 아랫사람에게 격려보다는 나무람을 먼저 하지 않았는지?
작은 일들이기에 그게 무슨 사과 할 일이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큰일은 오히려 용서도 빠른 법이다. 하지만 사소한 일은 그냥 스쳐가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뿐만 아니라, 상사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쉽게 사과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일로 상처를 준 사람을 찾아 내가 먼저 사과하고 가슴에 맺혀 있는 그 상처를 씻어주고 12월을 보내자.

그리고, 12월은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내 삶의 뒤안길을 생각해 보자. 정말 새끼손가락 끝에 붙은 작은 상처 하나가 기둥처럼 무거운 짐이 되어왔던 그 아픔도 따지고 보면 내 탓이었음을 깨닫게 하자. 며칠 밤을 지새워야 했던 그 일들도 내가 참아야 했음도 깨닫게 하자. 시도 때도 모르게 불쑥불쑥 치솟는 속상함을 곰 삭여 형체 없이 피어오르는 차 향기에 마알갛게 헹구어 바지랑대에 걸어두고 그렇게 12월을 보내자.

며칠 전 소포 하나가 붙여왔다. 작은 상자를 여러 겹 풀어보자 그 안에서 팔찌 한 개와 목걸이 한 개가 나왔다. 하얀 우리 구슬로 꿴 목걸이와 팔찌는 내가 보석에 대하여서는 잘 모르지만 분명히 시장 통 어디에서 팔거나, 아니면 문구점에서 초등학생들이 사서 목에 걸고 오는 것 같은 그런 제품이었다. 더구나 이 목걸이 팔찌는 내 건강한 팔과 목에는 알맹이가 부족해 대충 봐도 유리구슬 대 여섯 개는 더 꿰어야 내 목과 팔에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상자 속에는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 학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누구의 귀띔으로 그 학생의 어머님의 사연을 듣게 되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세 남매를 먹이고 입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 아이의 학비까지 혼자의 힘으로는 무척 힘이 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후 그 학생의 고등학교 3년은 내가 책임지게 되었고, 그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군 입대를 하였다. 졸업을 한 그 해 12월 마지막 날에 그 학생이 군복차림으로 손에는 작은 케익을 사 들고 나를 찾아왔다.

건강한 모습으로 반듯하게 잘 성장하여 나타난 씩씩한 군인이 된 그 학생을 보니 남의 아들이지만 정말 탐이 났다. 더구나 잠시 나눈 이야기지만 생각이 올곧고 눈빛이 살아있었으며, 대화 속엔 희망에 넘치는 꿈이 보였다. 케익을 준 그 군인은 주머니에서 봉투 한 개를 건네주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거제상품권 몇 장이 들어있었다. 시장바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아들의 고등학교 성장을 도와준 것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보낸 답례 선물이었다.
어머니가 보낸 선물이 아니고, 너가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그 때 양말 한 켤레만 사 오면 행복한 맘으로 받겠다고 봉투를 돌려보낸 후 꼭 1년이 되는 12월에 이 소포가 붙여온 셈이다. 나는 그 학생의 어머니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1년 전 12월엔 케익을 그리고 올해는 예쁜 유리구슬로 된 목걸이와 팔찌와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삶에 바빠서 그 학생도 그 학생의 어머니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하고 1년을 보내왔는데 그 어머니는 해마다 나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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