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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말 보다 힘이 쎘다. 가수 장사익은 가사·가락·발림을 삼투시켜 노랫맛을 냈다. '한글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주제로, 몇 일간의 행사를 끝내고 가진 피날레 시간이었다.
그는 몇 곡을 열창한 후 앵콜곡으로 ‘이게 아닌데’를 불렀다. “그으 랫↗다아아지이이~요↘오~” 가창파워가 강당 벽을 때리고, 천정에 부딪쳐 객석에 앉은 청자들 심중에 벼락치듯 꽂혔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 데~ 사는 게 이게 아-닌↗ 데에이이이이이~
연신 좌우로 흔드는 손에 가사의 호소력을 실었다. 시(詩)이면서도 산문이며 함축된 소설 같은 노래. 구슬픈 곡조에 추억과 눈물·회한과 반성·삶과 죽음이 비벼져 있었다. ‘이게’와 ‘아닌데’ 사이에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고뇌가 읽혔다.
수 백 명 청중(해외작가·동포문인·국내문인·학자들)의 연배는 높았다. 문력이 말해주듯 5060에서부터 고령의 7080이 대다수였다. 인생의 질곡을 겪어 낸 속칭 ‘아줌마 · 할매·할배 팬’들이 회억한 과거 속의 자신을 보는 것일까. 즐거움과 처연함, 기쁨과 슬픔, 체념과 기대가 혼재된 표정이었다. 생각만큼 보인다고 내 마음이 그러니 남들도 그렇게 보였다.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표출한 당대의 유행가는 민초들이 향유하는 문화의 중심에 있다. 사랑타령, 이별타령 눈물타령, 불륜색이 짙어 비윤리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서민의 삶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르다.
굴곡진 한국사와 문화, 사회적 변화를 표현한다는 거대담론 보다는 노래의 성격이 ‘나’와 동일시를 이룰 때 설득력이 높아진다. ‘이게 아닌데’가 바로 그런 류다.
시를 즐겨 읽는다는 장사익은 시어에 천착하여 만든 노래가 많다. 시에 긴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김용택의 시를 자신이 고안한 창법으로 숙성시켜 깊이를 더했다. 그윽한 감칠맛의 정서가 청자들의 촌음을 겨냥하여 자성(自省)을 유도했다. 반복되는 후렴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처럼 들렸다.
‘당신은 지금껏 올곧게 살았나요? 그렇게 자신할 수 있나요?’ 하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면 꽃이 집니다”라고 인식시켜 주었다.
그렇다. 봄이 가면 꽃이 지듯이 노인이 되면 인생은 진다. 그칠 새 없이 터지는 사고는 대문 밖에 황천길을 입증하고 있다. 뉴스는 날마다 예측하지 못한 사고의 주검을 통계내고, 사물화된 타자의 죽음은 무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산 사람은 자신의 명줄만은 길다고 착각한다. 이 모순은 험담과 미움이 격려와 칭찬을 이기는 사회악의 요인이 되고 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게 아닌데’를 되뇌며 돌아서면 후회하고, 다시 후회할 짓을 반복한다. 독이 든 쥐약인 줄 알면서, 위선인 줄 알면서 스트레스 피할 양으로 웬만한 일은 못보고 안 들은 척 한다. ‘상황이 안 좋아서’ ‘본의 아니게’ ‘별 수 없이’라고 핑계를 댄다. 봉사도 기부도 무기한 연장이다.
올 6월 한국문단을 뒤흔든 ‘신경숙 표절 사건’은 ‘이게 아닌데’의 압권이다. 그는 경제력과 인기절정 고개에서 낙뢰를 맞았다. 청문회장의 고위 공직자들처럼 ‘이게 아닌데’ 넘어 ‘그 정도를 가지고’란 궤변으로 문인의 위상을 훼손시켰다. 그의 해명은 한국문인들의 도덕성을 대변하는 역설이었다.
문학 작품에는 작가의 가치관과 삶의 철학이 투영된다. 여기에 사회적 현상이나 역사적인 흐름이 모티브가 되고, 문학적 효과를 낳는다. 신경숙 사건은 한국작가의 깜냥을 말해주는 사례로 문학사에 기록되었다.
어디 이뿐이랴. ‘이게 아닌’ 문제는 사회 도처에 잠입해 있다. 문학마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문학상이 돈으로 암거래 되고, 감투욕이 작가정신의 진정성을 짓밟고, 인기영합의 방편으로 문학을 이용한다. 야바위꾼 컨셉으로 변질된 당대의 문학언어가 사물화된 죽음처럼 참담하다.
장사익은 무대에서 인사를 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자세였다. 그는 일반인에 비해 문인은 무엇인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윤리성과 도덕성이 높고 따뜻한 인간미의 소유자라는 선입견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험한 세상에 아픈 사람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선상님들... 존경합니다”
이어 ‘이게 아닌데’를 불렀다. 인사말과 노래가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가 ‘존경하는 문인들’을 향해 외친 ‘이게 아닌데’가 부박한 문학 풍토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순간 민망함과 찹찹함과 서글픔이 몰려왔다. 나만의 자격지심이었을까?
지난 일 년을 짚어본다. ‘이게 아닌’ 일들로부터 한 발 비켜나 적당주의로 산 날들 뿐이다. 그 타성과 관성의 늪 사이로 사계가 지나갔다. 세밑에 서서 또다시 중얼거리게 된다.
정말, 이게 아닌데...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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