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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의 향연(饗宴), 거제도옥문석 /한국시인협회 회원

ㅇ형.
70년대 초만해도 거제의 주택은 초가집이 대세였지요. 산곡(山谷) 언저리나 언덕바지를 뒤로 한 초가집들이 정겨웠죠. 마실에서 동무들이랑 막걸리 사발이나 마시고 어스름 달빛을 밟고 집에 가면 동짓날 긴긴밤의 어머니 다듬이 소리가 천상(天上)의 소리였지요. 순간 정다움과 포근함에 가슴이 훈훈해지던 그 추억은 필설(筆舌)로 어찌 다 그려내겠습니까.

추석 무렵 청명(淸明)한 달빛을 이고 앉은 초가지붕의 하얀 박은 여의주 같았지요. 싸리대나 대나무 잔가지로 엮은 사립문의 정경은 풋풋한 인심이 그대로 마당으로 흘렀지요. 돌담 울타리도 그것대로 정겨웠지요. 씨족 단위로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이웃은 하나같이 형제처럼 살았던 그 세월이 그립습니다. 대대로 붙박이 삶이다 보니 이웃간의 비밀이 없었죠. 밥그릇,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였으니. 어디 이 뿐이던가요. 탁주를 담아 나무하러 가는 이웃 어르신에게 대접하던 그 정경(情景)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초가 삼간 사간이 대세이던 그 세월은 사람냄새가 물씬거렸는데... 그런 세월이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이런 걸 두고 바보천치(天痴)라고 하겠지요.

ㅇ형.
저의 기억으로는 조선공사가 아주 백사장에다 조선소를 건립하면서 거제는 격랑의 물결에 휩싸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조용하고 포근한 그 산촌과 어촌이 고조선 이후 천지개벽의 격랑시대에 내몰렸지요. 조용하던 아주마을은 소개(昭介)로 장승포 옥림으로 집단이주했지요. 이를 시발로 옥포, 와치, 장평 이런 마을들이 하루아침에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지요. 뿌리가 인정사정없이 뽑힌 것이죠. 얼마나 허허로웠을까요. 대한민국의 특기가 여지없이 이곳에서도 그 빛을 발했지요. 오직 현대만이 최우선인 이런 개발정책.

70년대부터 새롭게 시대의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 참 서글픈 이땅의 주택정책이지요. 단절은 슬픔밖에 없는데. 서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교동의 유산이 깡그리 사라졌으니까요. 남겨 두지 않고 두드려 부셔버리는 이런 DNA가 우리 선대들에게 있었던가요? 시나브로 변하던 세월이었는데. 유럽에 갔을 때입니다. 중세의 좁은 마차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활용하는 것이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 후대들은 회색 시멘트 덩어리의 애환을 어떻게 감당할려는지.

ㅇ형.
대한민국 섬 가운데 아파트 천국은 거제뿐일 겁니다. 요즈음은 단독 주택과 귀농자들의 황토집이 조금씩 아파트 천국에 새바람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아주 미미할 뿐입니다. 황토집의 온돌은 세계가 알아주는 과학적인 집인데도 이미 있던 것도 버리고 아파트로 둥지를 틀고 맙니다. 아파트 대한민국의 현대성이고, 거제시의 현대성이며 진행형입니다. 거제시의 기형은 아파트에서 거의 잉태되었습니다. 주변경관이나 환경같은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산수의 경관을 해친 아파트들은 돈 벌이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지요. 단순히 내가 살 집이 아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아파트를 모더니즘(modernism)의 아이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할까요? 이들은 방랑하고픈 충동을 수없이 느낄 것입니다. 그것을 억누르고 아파트 하나 소유하려는 욕망에, 아이들의 교육에 목매단 채 강박감에 허우적이겠지요. 심야 직장생활을 밥먹듯이. 도대체 누굴 위해서, 너무 낡고 천박하지 않은가요. 거제의 현대성이 이렇게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럼에도 우스꽝스런 아파트 단지 탄생은 끝이 없나봅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한국의 아파트를 보고 참 어처구니 없어하면서 나중에 아파트를 철거 할 때 자기를 참여시켜 달래요. 도와주겠다고. 발레리 줄레조는 우리나라를 아파트공화국으로 표현했더군요.(거제시 아파트현상은 자료를 더 취합해서 기회가 되면 내밀하게 스크린 한번 할 작정입니다.)

ㅇ형.
어쩌다가 거제가 이렇게 희극적인 도시로 탈바꿈 했는지요. 랭보는 "만일 위 삶이 독특하다면 독특하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신선하고 새롭지 않은 그 모든 것을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현대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제시 아파트 이렇게 무개념적인 일탈이 언제나 멈출까요. 동과 동 사이의 거리, 단지내의 조경, 이처럼 조악한 단지는 거제시만의 아파트 특징일 것입니다.

가망 없는 십자군 전쟁을 나 홀로 선포하고 풍차로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불쑥불쑥 솟아 거제의 아름다운 풍광을 짓밟는 콘크리트의 향연은 무슨 조화입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단 최면에 걸려 열린 사회에서 갇힌 사회로의 전진의 함의는 무엇일까요. 레비스토르스는 "교환은 인간의 생존방식"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선가요. 마치 토템적인 현상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존속 시키면서 변화를 얻었다면 이웃간의 단절은 없었겠지요. 토템적인 생활방식에서 카스트(caste)로 변속 기어가 너무 급히 들어갔습니다.

불평등 관계가 형성되게 되었고 집단 이기심이 모락모락 안개처럼 피워 오르는 것입니다. 공생의 개념이 퇴락하는 것이죠. 때문에 토템의 존재론적 교환 양식이 카스트의 소유론적 교환방식에 침잠되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인류의 역사적 운명이라나 뭐라나. 여하간 거제도는 아파트 천국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는 양대 조선소의 절대적 명분이기도 하고요.

ㅇ형.
기독교의 금단의 열매(好惡), 불교에서는 무명(無明)이 생기면서 이 세상을 하나로 보는 마음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끝도 없는 소유론적 욕망 앞에, 그렇다고 노자의 도(道)를 들여 댈 수도 없는 노릇이죠. 도피적이며 둔세(遁世)적으로 살 수도 없는 현실이죠. 거제의 아파트 현상은 소유론적 혁명의 표상이라고 하기도 떨떠름합니다.

이 현상을 정화시키고 치유하려면 인구 25만명이 넘는 경남 3대 도시에 걸맞는 문화가 생성되어야 합니다. 표피적인 문화운동이야 자생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깊이와 넓이는 아직도 먼 길 같습니다. 문화란 것은 흐르는 강물 같습니다. 고여서도 안되고 계속 순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소유물도 아니며 독점적인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문화 권력화는 기절초풍할 일이죠. 문화를 무시하는 시각은 더욱 문제고요.

거제시 당국은 조직내에 거제문화시 팀장이라도 하나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헐고 찌그러진 거제시를 문화도시로 재생시킬 혁신적인 팀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은데 누가 고민하고 있을까요. 이리 보고 저리봐도 거제시는 무계획이고 임시방편적인 도시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시(市)를 촘촘히 들여다 보세요. 허술하기가 그지없는 미완의 도시란 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어느 일면 양대조선소 의존형 도시라는 사실도 실감할 것입니다. 조선소 다음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아파트 단지의 생태도 촘촘이 챙겨보세요. 곳곳의 아파트단지 주변 환경도요. 생각키우는 게 많을 것입니다. 지금은 시민의 사회, 시민의 도시라는 생각으로요. 시민단체들도 이념이나 친일 이데올로기 문제 같은 지엽적인 문제는 밀쳤으면 합니다. 무엇이 시를 발전시키고 시민의 문화향유(文化享有)인지 보살펴줘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ㅇ형.
이제는 시민이 주도하는 도시문화가 생성되어야 하는 때입니다. 관의 일방적인 정책은 그 생명이 다한 시대인 것입니다. 시민과 더불어 관의 힘이 펼쳐질 때 그 시는 기존의 유(有)에서 신유(新有)로 혁신의 바람이 불겠지요. 원래 있던 것에 덧칠을 해서도 안되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해체해서도 안되겠죠. 디딤돌에다 재창조의 바람을 일으키는 일이겠지요. 도시 재생작업은 시의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런 문제를 숙고(熟考)해 본적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도로변의 생선장수들을 한 곳으로 모은다고 하던데 그 자체를 거제문화로 특화시킬 수 없을까요. 거제를 찾는 관광객이나 출향인들의 고향방문길의 필수 코스인데도. 시각을 문화와 공간개념에 꽂아보면 어떨까요. 고현종합시장과 연계하여 문화가 있는 시장으로 만드는 방안은 없을까요. 거제라는 특화된 상품에 문화를 접목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되지도 않는 수산물센터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거제, 생태환경도시로서 문화관광도시로의 탈바꿈으로 모던시티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쓸데없이 호수같은 고현항을 죽이는데 혈안이 된 이 생뚱맞은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지 참 환장할 일입니다. 그로 해서 닥쳐들 환경문제를. 시 당국자들은 마음에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요. 이 문제는 남해안의 부산, 진해, 마산, 고성, 통영시민과 함께 연계해야 할 생명운동인 것 같습니다. 유물이 거의 팔려나간 시점에 시립박물관 짓는다고 호들갑 떠는 일이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정당국이 무엇을 해야 문화도시로 신유의 길로 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문화 청맹과니는 과감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시가 문화도시로 가장 빠르게 재생의 길로 나갈 것입니다. 이웃 공동체의 생태도시가 이익 공동체 도시로, 그러니까 양극화의 시작점도 종착점도 아파트인 것입니다. 갈등과 비극을 동반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ㅇ형.
40년 전에 불어온 개발의 광풍을 이제는 잠재우고 시 전체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이슈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문화가 흐르는 도시의 재생사업인 것입니다. 개발광풍에 잊혀진 것들을 찾아 문화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 운동만이 조선소 다음으로 거제시가 먹고 살아갈 양식이 될 것입니다. 홍포에 가면 그 아름다운 풍광을 깡그리 망쳐놓은 절벽에 매달린 식당을 본 적이 있는지요. 이것을 허가한 사람의 의식구조로는 거제시가 문화도시로 창조도시(창조는 한창 유행하는 대한민국의 아젠다이지만)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문화도시는 있는 것을, 먼 시간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청면 사무소 앞의 고목이 죽었다가 다시 잎을 피웠는데 잘라버렸다던데, 그 전설을 왜 짓뭉갰을까요. 그 자체가 이야기이며 문화로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수백년이 된 전설을 보존가치가 상실되어서라고 하던데. 그렇다고 싹뚝, 섬뜩합니다. 문화는 단절이 아닙니다. 영속성입니다. 거제시, 이제는 특화된 문화도시로 신유의 길로 나아갔으면...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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