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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신문으로 보는 거제1897년 7월 29일 독립신문, 1930년 7월 22일 매일신보

1897년 7월 29일 독립신문 4면 3단 기사

기사제목 - 거제군 일운면 이운면 연쵸면 등디에

원문 번역 - 거제군 일운면 이운면 연초면 등지에 음력 오월 십칠일에 우박이 내렸다.

큰 것은 닭의 알도 같으며 밤(栗)도 같고 작은 것은 복수화도 같고 앵두도 같아 송아지와 닭과 오리가 맞아 죽고 장독과 사기 등 물건이 모두 부서지고 모시와 삼과 모가 우박 피해를 입어 끓는 물에 데여 낸 것 같고 모맥이 더욱 훼손돼 소가 어지러이 밟아 놓은 것 같아 그곳 인민들이 살 도리가 없다. 또 웅천군 땅에 음력 오월 십오일에 우박이 와서 목화와 삼과 모가 다 상했다고 경상남도 관찰사 조시영 씨의 보고가 이달 이십일일 내부에 왔다.

기사에 나오는 1897년 음력 5월 17일을 양력으로 계산하면 1897년 6월 16일이다.

현재에도 보기 드문 우박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118년 전 거제 지역에 적잖은 피해를 입혔던 것으로 보인다.

또 거제 지역보다 이틀 전 우박피해를 입은 지역은 ‘웅천군’은 개항기 창원시과 진해구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이다.

또 기사에 ‘이운면’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일운(一運)'과 '이운(二運)'은 조세양곡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漕運船)이 정박했던 포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중기 고현면(古縣面)이 19세기에 ‘일운면(一運面)’과 ‘이운면(二運面)’으로 분리되고 일운면은 다시 신현면과 일운면으로 분리되는데, 이운면은 현재 장승포, 옥포, 능포, 양정, 수양 지역이다.

1930년 7월 22일 매일신보 2면

기사제목 - 出漁船員三百餘名(출어선원삼백여명) 狂浪(광랑)에 싸혀 行方不明(행방불명)
二十日(20일)까지 判明(판명)된 慶南各地(경남각지)의 被害(피해) 아직도 모르는 곳이 적잖다 道保安課(도보안과)에 到着(도착)

원문번역 - 18일 미명(날이 밝지 않은 시간)부터 일기 시작한 대폭풍우로 부산 지방 피해의 상세한 것은 기보와 같거니와 경남 각군에도 상당한 피해가 많았으나 전신전화 불통으로 일찍 알지 못해 자못 초조하던바 현 20일까지 도보안에 도달된 각군 피해상황은 다음과 같다.

장승포 = 가옥 전파 11, 반파 14, 어선침몰 4척, 파손 6척, 거제 사망자 2명, 가옥 유실 5채, 어선 침몰 28척.

1930년 7월 18일 경남·부산 지역에 발생한 태풍으로 당시 거제 지역민들의 피해가 적잖았다.

이 기사가 게재되고 이틀 뒤인 1930년 7월 24일 매일신보 3면에는 7월 21일까지 경남도 보안과에 피해상황이 보고됐는데 거제 지역의 경우 주택 전파 32, 반파 및 기타 건물 전파 10, 반파 13, 어선 유실 3척, 어선 파손 90척, 사망자 2명, 행방불명 4명으로 나타났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30년 7월 18일 경남·부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이 태풍은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18번째 최저 해면기압이 낮은 963.7hpa로 기록돼 있다.

한편 우리나라 기상관측 자료 중 해면기압이 낮게 측정된 기록은 1959년 9월 17일 사라호(부산 - 951.5hpa)로 기록돼 있고, 다음은 지난 2003년 남해안을 강타한 매미(통영 - 954.0hpa)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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