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수렵과 채집생활에서 벗어나 정착생활로 접어 든 농경사회에서는 농산물의 생산에 실제 경험이 많은 노인들이 존경을 받았다. 토지를 중심으로 순환되는 친환경적 생산구조로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였고, 소규모 공동체에서의 교육은 도덕과 윤리에 기초한 상린관계와 충효를 가르쳤다. 그리고 수확된 생산물은 곳간이나 창고에 보관하였는데 곳간의 크기와 열쇠꾸러미는 부와 경제권의 상징이었다. 이는 실권자인 웃어른이 주로 관리하였고 이를 승계 받아야 명실공히 후계자로서의 권한과 지위가 인정되었다.

그러다 산업혁명과 함께 대량생산성과 공업화를 중심으로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핵가족화와 함께 시장경제는 생산과 소비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집단적인 교육제도와 화폐단위의 금융제도 및 대중매체 등을 통하여 모든 생산품은 표준화, 전문화, 극대화가 요구되었다. 나아가 인간성마저 맹목과 복종을 바탕으로 획일화, 기계화가 요구되었다. 국가와 기업들은 통합을 위한 메가트랜드(mega-trand)를 기치로 경쟁적으로 공룡처럼 몸집을 불렸으며, 재벌집단과 엘리트층이 기득권을 형성하고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등 폐해가 한계점에 이른다.

이때의 곳간은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편의점, 체인점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 곳간의 열쇠는 대기업이 전부 독점하고 있다. 소비자(consumer)들은 대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받은 땀 젖은 지폐로 기업의 곳간을 찾아가야만 했고, 결국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산된 물품에 마진까지 붙여주고 되사오는 이상한 행태가 이어졌다. 부의 편중과 수익불균형의 악순환적 경제구조는 노동력의 잉여가치를 이론적 배경으로 하는 노동운동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한편, 상류사회로의 진출과 신분상승을 향한 갈망은 살인적인 교육열을 낳게 되었고, 이는 기득권층이 독점하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서 그들의 영역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은 기존 메가트랜드 체제하의 통제적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고 마이크로 트랜드(micro-trande)로서 제 목소리를 내게 된다.
프로슈머(pro-sumer)라 일컫는 그들은 소비자단체 혹은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기존의 재벌들이 독점하고 있던 생산과 유통 등 곳간영역에 관여한다. 즉, 경제적 약자인 소비자에서 생산적소비자로서 세력을 넓히면서 자신들의 곳간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거스를 수 없는 새로운 물결이다.

이상은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약40년 전에 저술한 ‘제3의 물결’과 ‘부의 미래’ 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인데, 그에 대한 평가는 차지하고 거제시의 곳간과 관련지어 언급하고자 한다.
거제시는 위에서 언급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가 혼재된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 곳간은 양대 조선소를 배경으로 하는 조선과 해양플랜트산업이다. 약 반세기 동안 그 곳간의 과실인 수익과 세수로 시와 시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적인 생활을 누려왔다. 그런데 화수분처럼 무한할 것만 같던 그 곳간이 근래 급속히 비어가면서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구조조정은 일상이 되었고 늘어가는 미분양주택과 상가 및 원룸의 공실에 상권이탈까지 겹쳐 생활기반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대책을 찾아보지만 조선산업의 특성상 글로벌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우리의 영역 밖인지라 딱히 시원한 답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밀려오는 쓰나미 앞에서 언제까지나 조선소만 쳐다보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장 돌파구를 찾아 우리 스스로가 곳간을 만들어가야 한다. 눈앞에 닥친 초미지급의 위기 앞에서 더 이상 갑론을박에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모두 프로슈머가 되어 고현항이든 사곡만이든 뭐든지 미래의 곳간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때다. 과거의 내일이 현재이고, 현재의 내일이 곧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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